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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강강술래

 ▷ 강강술래의 유래

강강술래는 중요무형문화제 제8호로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와 도서지방에 널
리 분포·전승되어온 집단 놀이로서 주로 8월 한가위에 세시풍속의 하나로 놀
아왔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날에도 행하여진다.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이 놀이의 연원에 대해서는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결부된 설 등이 있으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
러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 및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행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오늘의 강강
술래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놀이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알려져 당시의 격전지였던
전남 남해안 일대에서 더욱 성행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 민속놀
이 중 여성놀이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정서가 넘친 율동적인
놀이로서 한가위 밝은 달 아래 펼
쳐지는 큰애기들의 한 바탕 원무
는 약동하는 생명력의 표상이다.

강강술래가 어느 때 어떻게 하여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하게 밝혀볼 수 없고 다만, 이 놀이가
꽤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
은 모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오늘날에 보이
는 강강술래의 시원(始原)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 마한(馬韓)의 습속에 관한 기
록이 보인다. 5월에 씨를 다 뿌리고 귀신을 제(祭)한다. 때를 지어 모여 노래하
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밤낮 쉬지 않고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는데, 다 같이 함
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추며 손발을 맞추어 몸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
서 땅을 밟는다. 이와 같이 탁무(鐸舞)와 비슷한 춤을 10월 농사를 끝낸 후에 또
다시 춘다.

위와 같이 마한의 습속에는 파종을 끝낸 5월과 추수를 끝낸 10월에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셔가며 밤낮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며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러한 원무(圓舞)의 형식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강술래는 또는 강강수월래 등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강강술래 노래로
미루어, 강강술래놀이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추측하는 것이다. 훨씬 후, 이것이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전술(戰
術)과 결부되어 그 뜻이나 내용에 대한 폭이 넓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 명량(鳴梁) 바다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
과 12척밖에 없었고, 이에 비해 왜선(倭船)은 3백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왜적과 맞서기 어렵게 되자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 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의 대군이 산 봉우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
다. 이와 같은 의병술(擬兵術)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아낙네
들이 산봉우리를 돌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비롯이라는 설이다.

둘째, 위와 같은 이야기지만, 산봉우리를 돌지 않고 갯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면서 왜적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그 후 현지 주민들은 충무공의
승전(勝戰)을 기리기 위해서 이때 의병술(擬兵術)로 쓰였던 춤을 놀이화 하여 강
강술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셋째, 옥동(玉洞) 앞바다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왜적의 피로 바닷물이 물
들어 이곳을 <피바다>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또 우수영(右水營)앞에 있는 울도에
쇠줄을 매달아 왜선이 지나갈 때 쇠줄을 당기어 격침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
한 싸움을 할 때 병력이 적은 충무공은 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진도(珍島) 둔
절리 뒷산을 곡창(穀創)으로 의장(擬裝)하여 군량이 많음을 과시하고, 한편 아낙
네들을 동원하여 각기 색색옷을 입혀 산 둘레를 돌게 하였다. 이를 끝없는 군사의
행렬로 착각한 왜적은 크게 놀라 달았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의장(擬裝)된 군사
행렬이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넷째, 임진왜란 때 남자는 모두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터에 나갔고 마을에는 아낙네
들만이 남았다. 충무공은 아낙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좌수영 동쪽에 잇는 옥매
산(玉埋山)에 올려보내 강강술래를 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의병술에 속아 왜적이
물러났다고 한다. 충무공의 의병술로 창안한 강강술래가 민속놀이화 되어 그 후 계
속하여 전승되었다고 하며, 강강술래라는 말은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한다.

위의 몇몇 속설(俗說)대로 따른다면 강강술래놀이는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
차 강강술래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 놀이
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져 당시의 격전지였
던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 놀이는 주로 한가위날 밤에 놀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밤을 비롯해
서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어느 때든지 달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아왔다.

 강강술래의 놀이 형태   

걷기, 뛰기,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 멍석 말기, 기와 밟기, 대문 열기,
꼬리 따기, 끝내기 등이 있다.

 ▷ 전승지역

전남 해남과 진도 등 주로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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