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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6 전체: 1428444

 

고산 윤선도의  시조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윤선도는 1587년 (선조 20년) 음력 6월 22일 한양 연화방에서 출생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연지동이다. 그의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가계를 보면 고산은 해남 윤씨의 시조로부터 16세손이다. 해남 윤씨 종가에 입양
되어 해남에서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광범위하게 공부하여 교양을 쌓았고
특히 소학을 가까이 하여 지침으로 삼았다. 진사시(26세)에 합격한 후 성균관 유
생으로 공부하던 때에 집권세력의 죄상을 상소하였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
당하였다. 그 후 인조반정(1623)으로 이이첨 일파가 처형되기까지 8년 유배생활
후 의금부 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해남으로 내려가 지냈다.

42세때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송시열과 함께 봉림,인평대군의 사부
로 지냈고, 51세 되던해 인조(1637年)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청나라에 항복하자
통분하여 세상을 멀리하고자 제주도로 향하던중 보길도를 발견, 산수에 매혹되어
부용동(芙蓉洞)에 낙서재를 짓고 살았다.

이듬해 난이 수습된후 왕에게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다시 경북 영덕으로
유배를 갔다가 1년만에 풀려났다. 이후 10년동안 고산은 보길도 부용동에서 지내
면서 65세(효종1651)에 보길도를 배경으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었다

                              <어부사시사비-해남,보길도>
..

1659년 효종이 죽자 효종의 능을 정하는 문제로 73세에 함경도 삼수로 귀양간다.
81세에 풀려나 보길도(甫吉島) 부용동으로 돌아와 낙서재에서 85세로 눈을 감았다.
한평생을 유배와 은둔. 출사와 귀양을 반복하며 살다가 간 고산은 학자이기도 하고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그의 이름은 시인으로서 가장 빛난다.

대표적인 작품에는 산중신곡(山中新曲)부터 시작하여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
고금영(古琴詠) ·증반금(贈伴琴) ·초연곡(初筵曲) ·파연곡(罷宴曲)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어부사여음(漁父詞餘音) ·몽천요(夢天謠) ·견회요(遣懷謠) ·우후요
(雨後謠)·일모요(日暮謠)·오우가(五友歌)·기세탄(饑歲歎)등이 있다.

 ▷ 작품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앞 개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 비친다배 떠라 배 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어 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의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춘사(春詞)1수

연잎에 밥 싸 두고 반찬을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청약립은 써 있노라 녹사의 가져 오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백구는 내 좇는가 제 좇는가
                                 -하사(夏詞)2수

수국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만경 징파에 슬카지 용여하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을 돌아보니 멀도로 더욱 좋다
                                   -추사(秋詞)2수

간 밤에 눈 갠 후에 경물이 달랐고야
이어라 이어라
앞에는 만경유리, 뒤에는 첩첩옥산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선곈가 불곈가 인간이 아니로다
                                    -동사(冬詞)4수

이 작품은 작자가 65세 되던 해인 1651년(효종 2) 가을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이다.

                                      <보길도 청별항>

봄(春詞)· 여름(夏詞)· 가을(秋詞)· 겨울(冬詞)로 나뉘어 각각 10수씩 모두 40수로
되어 있다. 고려 때부터 전하던 《어부가(漁父歌)》를 이현보(李賢輔)가 9장으로
고쳐 지었고, 다시 윤선도가 시조의 형식에 여음만 넣어 완성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시상(詩想)을 얻었다 하나, 그 한시구(漢詩句)의 어의(語
意)나 어음(語音)에 상응하는 우리말로 전혀 새로운 자신의 언어를 능란하게 구사
하여 속계를 벗어나 물외(物外)에 서서 자연에 합치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나
타내었다.

          오우가 五友歌

내 버디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머엇 하리.

           
구름 빗치 조타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는 믈 뿐인가 하노라.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플은 어이 하야 프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 아닐손 바회 뿐인가 하노라.

           
뎌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늘
솔아 너는 얻디 눈 서리를 모르는다.
구천(九泉)의 불희 고든 줄을 글로하야 아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쟈근 거시 노피 떠셔 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광월(光月)이 너만 하니 또 잇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

작자가 56세 때 해남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속에 들어 있는 6수의 시조로,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서시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와 관조를 표백하
였다. 이는 고산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으로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
내어 시조를 절묘한 경지로 이끈 백미(白眉)이다

  ▷ 유적지

 윤고산 고택과 유물관

해남읍 연동 소재. 해남읍에서 대흥사쪽으로 향하다가 왼편에 있음.

                                   (녹우당과 고산유물관, 산중신곡)

            보길도 부용동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지역. 사적 제368호
이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고산이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시가 이곳
에서 창작되었다.

    낙서재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등 주로 기거하던 곳이다.

    동천석실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동천석실이라는 한칸집의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변의 석문, 석천, 석폭, 석대도 장관이다.

    세연정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정자로, 정자의 중앙에 세연지, 동편에 호광루, 남쪽에 낙기,
서편에는 동화각과 칠암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판석보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하며,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으로, 한국 정원
의 독특한 유적이다. 이것는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세연정, 동천석실, 판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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