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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고정희의 상한 영혼

 ▷고정희(高靜熙: 1948-1991)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를 발표하며 문단
에 데뷔하였다. 허형만·김준태·장효문·송수권·
국효문 등과 ‘목요회’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
다. 1984년부터는 기독교신문사, 크리스찬아
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
화운동 동인 ‘또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는
등 사회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하였다.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
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여성해방출사표》(19
0), 《광주의 눈물비》(1990),《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와 유고시집으
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시집 가운
데 《초혼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장시집(長詩集)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43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그녀의 기일이면 생가가 있는 해남군 삼산면 송
정리는 ‘고정희 기념관’을 보려는 문학 지망생들과 뒷산에 자리한 묘에 국화
를 바치려는 그녀의 친구들로 분주하다고 한다. 짧았던 고정희의 삶이 치열
했던 만큼 사후 그녀에 대한 관심도 치열한 듯하다.

고정희는 정말 시인다운 시인이었다. 넉넉치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고등
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1975년 27살에 한국 신학대학에 입학하면서 문단
에 등단했다. 이후 《지리산의 봄》《아름다운 사람 하나》 등 10여권의 시집
으로 시대의 아픔을 힘차게 껴안으면서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기
도 했다.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시를 ‘날카로운 투시와 비판’, ‘탄탄한
리듬과 힘찬 구성’이라고 극찬했다. 전라도의 질펀한 황토 흙에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역사적 물줄기를 담기도 하고 사랑.눈물.삶 같은
잔잔한 감동도 담아냈다.

고정희의 시세계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실현을 꿈꾸는 희망찬 노래에서
부터 민족민중문학에 대한 치열한 모색, 그리고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
즘 문학의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탐구와 정열을 감싸 안는
다. 그리고 그 모든 시에서 생명에의 강한 의지와 사랑이 넘쳐난다. 고정희의
이와 같은 치열한 역사의식과 탐구정신은 5. 18 광주 항쟁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즉 그녀는 전통적인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
을 빌어와 민중의 고난과 그 고난 속에서 다져지는 저항의 힘을 힘차게 노래
하였던 것이다. 현실사회의 개혁과 더불어 새로운 글쓰기의 혁명은 이처럼
고정희에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두 개의 중요한 삶의 지향점이었다.
이토록 정직하게, 줄기차게, 자유를 향한 이념을 불태우며 민족, 민중, 그리고
여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그녀는 문학가로서, 여성운동가로서 한국 문학사
에 대단한 족적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라.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은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시인의 시화비가 1997년 10월 18일 광주문예회관 야외원형광장에 세
워졌다. 그의 대표작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전문이, 굳은 의지가 묻어나는 얼
굴 모습과 함께 높이 2.5m 폭 2m 크기의 화강암에 새겨졌다. 그의 시를 사랑
하는 김종 시인, 범대순(전남대 명예교수), 정윤태(광주미술협회 회장), 손광
은(전남대 교수), 박홍원(조선대 교수), 문도채 시인, 전원범(광주교대 교수),
신동언(화가)씨 등이 시화비 건립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했다.

그의 비문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투시력과 비판을 종횡으로 구사한 시인”
이자 “분노에 젖었던 시대적 아픔을 힘차고 당당한 서정으로 고양시켜 실천적
의지와 전망을 참신한 표현으로 보여줬다”고 쓰여 있다.

▷ 생가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시인의 생가와 묘, 광주문예회관 앞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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