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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6 전체: 1413735

 

김남주의 나의칼 나의피

 김남주(金南柱, 1946∼1994)

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나
전남대 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74년 계간《창
작과 비평》여름호에 시 <진혼가><잿더미> 등 7편
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70년대 격변의 시기에 전남
대 영문과에 입학하여 3선개헌 반대, 교련반대운동
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88년 12월 가석방으
로 출소하였다. 출소이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
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죽
는날까지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1984년 첫시집《진혼가 》이후 《나의 칼 나의 피》
(1987)《조국은 하나다》(1988) 《사랑의 무기》
(1989)《솔직히 말하자》《사상의 거처》《이 좋은
세상에》와 시선집《사랑의 무기》 옥중 시전집
《저 창살에 햇살이》(전2권) 산문집《산이라면 넘
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시와 혁명》등이 있
으며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아타 트롤>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제6회 단재상 문학 부문, 제3회 윤상원상, 제4회 민족예술상
등을 받았다.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작고하였다.

그는 안락의자를 시의 무덤이라 말하고 투쟁을 시의 요람이라 부름. 시의 주된 원천
은 농촌체험과 감옥체험이며 적에게는 가열찬 증오, 민중에게는 따뜻한 애정을 보여
주고 있다. 광주 망월동 묘지의 묘비에는 "온 몸을 불 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
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 함께 가자 우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밭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우리 민족의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조국과 민족의 완전한 통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
는 한동안 일반인의 화제에 오르는 것이 금기로 여겨졌다. 이런 불행한 시대에 김남
주는 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은 순수한 열정과 희생이 따라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노래하고 있다. 전통적 율격과 민요 또는 유행가 가사를 적절히
삽입함으로써 민중의 정서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나의 칼 나의 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그대 살찐 가슴 위에 언덕 위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평등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지켜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법관이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농부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너머 평지길 황톳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는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투석기의 돌 옛사랑의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평등이여 평등의 나무여.

 ▷ 노 래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靑松錄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부가 그물을 던지다 탐조등에 눈이 먼 바다에도 있고
나무꾼이 더는 오르지 못하는 입산금지의 팻말에도 있고
동배꽃 까맣게 멍드는 남쪽 마을 하늘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
지는 달과 함께 자며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
제 노동으로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고
한 사람의 평등한 인간이고자 고개를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허리에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삼팔선은
농부의 가슴에만 노동자의 허리에만 있으랴
그 가슴 그 허리 위에 거재를 쌓아올리고
아무도 얼씬 못하게 철가시를 꽂아놓는 부자들의 담에도 있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하는
패자들의 남침위협 공갈협박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나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마천루의 나라 미국에도 있고
살인과 약탈과 방화로 달라를 긁어모으는 그들의 군수산업에도 있고
그들이 북으로 날리는 위장된 평화의 비둘기에도 있다.

 ▷ 시인의 말

"당신은 묻습니다 나에게, 시와 혁명의 관계를.
시는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는 문학적
수단입니다. 시가 혁명의 목적에 봉사하는 문학
적 수단임에는 틀림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
에 종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는 그 자체의 독자적인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혁명에 봉사하는 것이지 기계적으로 혁명의 종
속적인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
해서 시와 혁명의 관계는 서로 자기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밀접하게 상호 보완하는 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남주 김남주 아, 김남주
                                 
                김승환(충북대학교 교수)

나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그런데 지금도 나에게 문학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분들은 나를 만나면 자근덕거리며 문학을 강의한다. 문학은 이러저
런 것이므로 여차저차해야한다는 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학은 순수해야하므로
무릇 문인(文人)이라면 고상하고 멋있게 글을 쓰고 홍진(紅塵)의 썩은 무리들과는 초
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가대소 치미는 웃음을 삼키면서 시치름한 표정
으로 문학개론을 경청한다.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문학 예술은 현실주
의적 의미를 가져야하고 또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내가 경멸을 참아가면서 문학의 현실주의적 관점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김남주라는 시인 때문이다. 순결의 시인, 혁명의 불꽃 김
남주! 그는 지금 광주 망월동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데 그의 혼(魂)은 삼천리를 선들어
지게 휘젓고 다니면서 자신이 믿었던 진실을 뿌리고 있는 혁명가다. 내가 김남주를 좋
아하는 것은 시가 좋다거나 칼날같은 혁명가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유토피아(utopia)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써 이루
고자하는 유토피아, 그런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범부(凡夫)는 되지 못한다. 그리
고 그런 사람은 불행할 수가 없다. 고난과 역경의 짧은 일생을 살다가 죽은 김남주지만
그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민족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민중을 온맘으로 껴안았기에
말이다.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 1994년 타계, 『사
상의 거처』 등 10여권의 시집과 저작들--. 나에게 문학을 가르치려는 사람의 눈에는
영락없이 패배한 낙오자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눈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혁명
가로 보인다. 

그의 시 「조국은 하나다」는 자신의 절명시와도 같은 가작이면서 동시에 민족의 비
원(悲願)을 담아낸 이 시대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절대주의를 절대
적으로 믿었던 순결한 사람 김남주 그는, 이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감싸안았던 우
리의 희망이었다. 깊이 내쉬는 한숨과 남몰래 닦는 눈물들이 그의 영혼을 적셔주고
있을 때 그는 삿갓구름처럼 앙바티고 서서 우리들에게 진실의 비를 뿌려준다.

 ▷ 유적지

생가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다. 2007년 5월 27일에
생가가 복원되어 그가 갇혔던 독방이 재현됐고 흉상이 세워져 있다.
전남대 5.18기념관에는 그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망월동
구묘역에 묘지가 있으며, 광주비엔날레공원에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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