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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김삿갓과  무등산

 ▷ 김병연(金炳淵 :1807~1863)    

 자는 성심.   호는 난고(蘭皐). 흔히 김삿갓 또는 김립이라고 불림.
평생 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김삿갓'
으로 더 유명한 김병연은 1807년 경기도 양
주에서 태어났다. 김병연의 본관은 안동으로
원래 그의 집안은 당시 세도 정치로 힘이 막
강했던 명문가였다.

그러나 1811년(순조11) 홍경래의 난 때, 평
안도 선천 부사로 있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여 자손들은 죽음을 당
하거나 종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때 어린
김병연은 노비 김성수의 도움으로 형과 함
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다. 후에 그의
집안에 내려졌던 죄가 용서되어 집으로 돌
아왔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는 홧병으로 돌
아가셨고, 어머니는 폐가망신한 집안이라고
멸시 받는 것이 싫어서 자식들을 데리고 강
원도 영월로 이사해 숨어 살았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모친의 정성에 힘입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글 공부에 힘써 나이 스물, 결혼한 그 해에 백일장을 보게 된다. 과제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論鄭
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는 것이었다.
김병연은 홍경래에게 항복한 김익순의 잘못을 시로 써서 장원 급제하
였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이야기를 듣
고 조상을 욕한 죄인이라며, 처자식을 버려두고 방랑의 길에 올랐다.

이때부터 김병연은 스스로 푸른 하늘을 볼 자격이 없다며 삿갓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를 벗삼아 방랑 생활을 시작햇다. 김병연은 신분을 감춘
채 여기저기 발길이 닿는대로 떠돌아 다니며 아무데서나 먹고 잤다.
김병연은 전국을 다니면서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담긴시를 많이 지었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관리나 못된 부자들을 만나면 이들을 비판하는 시
를 지어 따끔하게 혼을 내주기도 했다.

            <김삿갓 동산의 시비>
당시 선비들의 한시와는 달리
김병연의 시에는 재치와 익살이
넘친다. 또 대부분 세상을 풍자
하고 한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
져 있다.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
카로운 풍자로 귀족 사회를 희롱
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
환을 읊으며 일생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러한김병연의 시와
행동을 좋아했다.
김병연의 아들 익균은 아버지를
찾아다니며 여러차례 집으로 돌
아오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방랑
을 멈추지 않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온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일화와 기발한 시구를 남
겼다.
김병연은 1863년 전라남도 동복
(화순)에 있는 한 선비의 집에서
57세의 나이로 한 많은생애를
마쳤다. 뒤에 아들 익균이 찾아와 아버지의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기슭에 묻었다.
 

 ▷ 김병연이 과거에 급제한 시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대나무 시

           竹詩(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 게으른 아낙네

           懶婦(나부)

無病無憂洗浴稀 十年猶着嫁時衣 (무병무우세욕희 십년유착가시의)
乳連褓兒謀午睡 手拾裙蝨愛첨暉 (유연보아모오수 수습군슬애첨휘)
動身便碎廚中器 搔首愁看壁上機 (동신변쇄주중기 소수수간벽상기)
忽聞隣家神賽慰 柴門半掩走如飛 (홀문인가신새위 시문반엄주여비)

병 없고 걱정 없는데 목욕도 자주 안해
십 년을 그대로 시집 올 때 옷을 입네.
강보의 아기가 젖 물린 채로 낮잠이 들자
이 잡으려 치마 걷어 들고 햇볕 드는 처마로 나왔네.
부엌에서 움직였다하면 그릇을 깨고
베틀 바라보면 시름겹게 머리만 긁어대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굿한다는 소문만 들으면
사립문 반쯤 닫고 나는 듯 달려가네.

 금강산

           金剛山(금강산)

松松栢栢岩岩廻 (송송백백암암회)
水水山山處處奇 ( 수수산산처처기)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김삿갓 동산의 <금강산>시비와 화순 물염정 옆에 있는 시비와 석상

 낙민루

           樂民樓(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 김삿갓 유적지

광주시내에서 무등산으로 올라가다 보면 제4수원지 옆에 청풍쉼터가 있다.
이곳에 김삿갓동산이 있고 그 안에 시비가 있다.
또한 화순군 동복댐 적벽 근처에 있는 물염정 앞에도 시비가 있다.
그의 묘는 처음에는 동복에 있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에 의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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