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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6 전체: 1428444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승옥(金承鈺, 1941년생)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5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성장하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
했다. 1962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등단.  김 현, 최하림 등과 동인지 「산문시대」
발간. 동인지에 <건(乾)> <환상수첩>등 발표.
1963년 「산문시대」에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확인
해본 열 다섯 개의 고정 관념 >등 발표. 1964년 단편 <역
사(力士)> <무진기행> <차 나 한잔> 등을 발표했으며 19
65년 단편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
고, 1967년 영화 <감자>로 감독데뷔. 이후 소설 창작보다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 1977년 단편 <서울의 달빛 0장>으
로 제 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먼지의 방>연재 중단 이후 기
독교 신앙에 귀의하면서 절필. 1995년 <김승옥 소설전집>
(문학동네)을 출간했는데 이 전집은 총 5권이며 제1권은 단편, 2권은 중편 및 미완작품,
3권과 4권은 장편, 5권은 콩트로 엮었다. 세종대 국문과 교수 역임.
그는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적확한 사용,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그리고 치밀한
완결성으로 한국 현대 문학을 한 차원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무진기행(霧津紀行)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
아 있는 사람들 사 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킬로 남았군요."
 "예, 한 삼십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 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데드롱직(織)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
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로 갈아
탄 이래, 나는 그들이 시골사람들답지 않게 앉은 목소리로 점잔을 빼면서 얘기하는 것
을 반수면(半睡眠)상태 속에서 듣고 있었다. 버스 안의 좌석들은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시찰원들의 대화에 의하면 농번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할 틈 이 없어서라는 것
이었다.
 "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께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
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
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
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
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
가 없었다. <하략>

   줄거리

아내의 권유로 '나'는 무진으로 떠난다.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했고, 얼마 후
제약 회사 전무가 될 서른세 살의 '나'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더 젊은 날의 추억이 있
는 무진으로 간다. 짙은 안개, 그것은 무진의 명물이었다. 과거에도 무언가 새 출발이
필여할 때면 무진에 오곤 했었다. 그러나 늘 어두운 골방 속에서의 화투와 불면과 수
음, 그리고 초조함이 있었을 뿐이다.

무진에 온 날 밤, 중학 교사로 있는 후배 '박'을 만난다. 그와 함께, 지금은 그곳 세무
과장이 된 중학 동창 '조'를 만난다. 그는 '손금이 나쁜 사내가 스스로 손금을 파서 성
공했다.'는 투의 얘기에 늘 감격해 하던 친구다. 거기서 하인숙이라는 음악 선생을 소
개받는다. 대학 졸업 음악회 때 '나비 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는 그녀
는 술자리에서 청승맞게 유행가를 부르고, 둘만이 함께 있을 때 무진에서 자신을 구원
해 줄 것을 '나'에게 간청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날  만
나기로 약속한다.

이튿날,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방죽 밑에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바다로
뻗은 방죽, 거기 '나'가 과거에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갖는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온 급전(急電)이 과거의 의식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다.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나, 곧 찢어 버린다. 이제는 영원히 기억의 저편
으로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곳을 떠난다.

김승옥의 무진 기행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감수성을 보여주는 데 그것은 바
로 등장인물 이외의 자연을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대변시켜주는 존재로 그 의미를
확대 해석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배경으로 처리되는 바람, 햇빛, 안
개 등이 그러한데 안개의 경우 단순한 자연 환경으로서의 안개가 아니라 그 곳에 살
고 있는 인물들의 허무의식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비평가들
에 의해 '감수성의 혁신'으로 까지 불려졌던 바 그만큼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전후 사회에서 '출세한 촌놈' 이 갖게 되는 내면의 상태를 예리
하게 형상화하였다. 부잣집 딸인 아내 덕에 제약회사의 전무로 승진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은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고향 무진에
와서는 그러한 자신의 세속성에 더욱 죄의식을 느끼며 과거의 순수했던 청년시절로
돌아갈 것을 꿈꾸기도 하나 결국 서울로 올라오라는 아내의 전보는 그 모든 것을 일
순간에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이 작품은 곧 순수의 무진을 떠나 세속의 서울로 향
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무진과 서울, 과거와 현재, 그리고 순수와 타락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
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 1964년 겨울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원이 없어졌고 사내
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광고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
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그저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 <작품 중에서>

 ▷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安)'과 만나 대화를 나
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
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나'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다. 부잣집 아들인 '안(安)'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
는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明滅)하는 네온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
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
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판매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
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셋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
구경에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숙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
잡힌다. 갑자기 '아내' 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
린다. '나'와 '안(安)'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셋은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안(安)'의 고집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고, '안(安)'과 '나'는 서둘러 여관
을 나온다. '안(安)'은 사내가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나'와 '안(安)'은
"우리는 스물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나'는
'안(安)'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
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
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
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보여준다.

무진기행의 무대인 전남 순천시 순천만 대대포구 갈대밭과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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