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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김지하의 오적(五賊)

 ▷ 김지하(金芝河 1941년생)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필명은 지하(芝河), 형(灐)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1959년 서울대 미학과 입학,
1966년 졸업.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 첫 투옥 이후
1980년 출옥 때까지 투옥, 재투옥을 거듭하여 장장 8년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냄. 1963년 첫 시 <저녁 이
야기>를 발표한 이후, 1969년 [시인(詩人)]지(誌)에 <황
톳길>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1970년 5월, 제 3공화국 당시의 현실을 풍자한 장시 <오
적시(五賊詩)>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체포, 투
옥됨. 이 시를 게재한 [사상계]는 경영난과 <오적> 필화
사건을 계기로 당국의 폐간처분을 받아 통권 205호를 끝
으로 1970년 9월에 폐간됨.

투옥 100일 만에 석방된 후, 희곡 <나폴레옹 꼬냑> 상연. 1970년 12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바친 처녀시집 [황토]를 간행함. 사회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이
담긴 시를 쓰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여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반독재,
반파쇼, 반군사정부 투쟁의 선봉에 섬.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 작가 회의로부터 제 3세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터
스(LOTUS) 특별상' 수상.
국제시인협회(Poetry International)의 '위대한 시인상' 수상(1981),
브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수상(1981).

1980년대 '생명'에의 외경(畏敬)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답고 도저한
인간 사회 자연이 하나 되는 '생명운동'을 전개. 1991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분신 관련 칼럼 '젊은 벗들!(일명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로 민주운동권
세력내에서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 킴(시인은 2001년 이 칼럼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힘.). 1990년대 말부터는 새로운 문화담론인 '율려(律呂)운동'을
활발히 전개 중임.

첫시집 [황토(黃土)](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2(1986),
[검은 산 하얀 밤](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
(1989), 대설(大說) [남(南](1982, 1984, 1985) 등의 시집과 '생명사상'을 설파한
산문선집 [생명](1992) 등이 있다.

1995년 9월 17일자 일간지에 고통과 수난, 압작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지하'란
이름을 버리고 '김형'이라는 필명(筆名)을 사용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힘.

 ▷ 오적(五敵)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재벌), 국회의원(국獪의猿)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 장성(長猩),
장차관(暲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하략)

 ▷ 해설

<오적(五賊)>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이 보인다.
그러한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담시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는 짧은 '이야기 시'의 형태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첨예한 내용을 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오적(五賊)'(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일제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오적'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율
적이고 근대화된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일제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그런 후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 작가의 말

'산이 있으니까 산에 간다.'  ([오적](동광출판사, 1985) 서문)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는 등산하는 사람 나름의 말이 있다. 물론 그 말은 핑계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일별의 가치는 있다. "산이 저기 있으니까 산에 간다."라는 말이다.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그때 그 무렵 내 심경이 이러구
저러구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만 이야기하자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
을 썼겠지 그것뿐이다.    -1985년 8월 13일 치악산 밑에서 김지하

 ▷ 현 거주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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