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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3 전체: 1428725

 

 김진섭의 백설부

 ▷ 김진섭(金晋燮: 1903 - ?)

전남 목포 출생. 호는 청천(聽川). 1916년에 상경하여 양정
고보를 다니고 도일하여 일본의 호세이(法政)대학에서 독문학
을 전공하였다. 대학재학시절에는 1926년 손우성(孫宇聲)·이
하윤(異河潤)·정인섭(鄭寅燮) 등과 함께 《해외문학》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소위 해외문학파의 일원이 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자 귀국하여 1928년에는 현재의 서울대학 전신인 경성제국대
학 도서관의 촉탁으로 있으면서 문필활동에 종사하였다. 또 서항석(徐恒錫)·
이헌구(李軒求)·유치진(柳致眞)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결성하여 연극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으며, 1945년에는 경성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등 폭넓은 활동
을 계속해왔다.

해방이 되자 46년에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직을 맡고 서울대, 성균관대 등
에서 독문학 강의를 하며 후진의 지도에 힘썼다. 1946년에 《독일어교본》을
내기도 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작품활동을 하고 모송론(母頌論)을 발표하
면서 본격 수필을 쓰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수필문학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헌신했다. 「무형의 교훈」「가정지우(家庭之友)」「모송론」「기후 철학」
「등하 잡기」「문학의 진보, 퇴보, 작품과 독자」「괴테의 범랑」「내가 꾸미
는 여인」「올해는 어디로」등을 비롯하여, 1930년대와 40년대의 20여 년 동
안 백여 편의 본격적인 수필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1950년 7월
6·25동란 당시 서울의 청운동 자택에서 납북된 후 오늘날까지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 있다.

수필집으로는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등이 있다. 1955년에 《교양의
문학》이 간행되었고, 1958년에는 유작 40편이 수록된 《청천수필평론집(聽
川隨筆評論集)》이 출간되었다.    

 ▷ 백설부(白雪賦)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닐 것이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
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
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지릴 때, 우리는 어찌된 연유(緣由)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색채
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目禮)를 보내지 않을 수 없
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太古)의 음향을 찾아 듣
기를 나는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抒情詩)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
가면 최초의 강설(降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
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눈과 같이 온 이 넓고 힘세
고 성스러운 나라 때문에 도회는 문뜩 얼마나 조용해지고 자그마해지고 정숙
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때 집이란 집은 모두가 먼 꿈 속에 포근히
안기고 사람들 역시 희귀한 자연의 아들이 되어 모든 것은 일시에 원시 시대
의 풍속을 탈환한 상태를 정(呈)한다.

온 천하가 얼어붙어서 찬 돌과 같이도 딱딱한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
부터 이 한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
려오는 것인지, 비가 겨울이 되면 얼어서 눈으로 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만일에 이 삭연(索然)한 삼동이 불행히도 백설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의 적은
위안은 더욱이나 그 양을 줄이고야 말 것이니, 가령 우리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
서 추위를 참고 열고 싶지 않은 창을 가만히 밀고 밖을 한 번 내다보면, 이것이
무어랴, 백설 애애(白雪楙楙)한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어 있을 때, 그때 우리가
마음에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말할 수 없는 환희 속에 우리가 느끼는 감
상은 이 아름다운 밤을 헛되어 자버렸다는 것에 대한 후회의 정이요, 그래서 가
령 우리는 어젯밤에 잘 적엔 인생의 무의미에 대해서 최후의 단안을 내린 바 있
었다 하더라도, 적설(積雪)을 조망하는 이 순간에만은 생(生)의 고요한 유열(愉
悅)과 가슴의 가벼운 경악을 아울러 맛볼지니, 소리없이 온 눈이 소리없이 곧 가
버리지 않고 마치 그것은 하늘이 내리어 주신 선물인거나 같이 순결하고 반가운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또 순화(純化)시켜 주기 위해서 아직도 얼
마 사이까지는 남아 있어 준다는 것은, 흡사 우리의 애인이 우리를 가만히 몰래
습격함으로 의해서 우리의 경탄과 우리의 열락(悅樂)을 더 한층 고조하려는 그
것과도 같다고나 할는지!

우리의 온 밤을 해복스럽게 만들어 주기는 하나,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
는 감미한 꿈과 같이 그렇게 민속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한 번 내린 눈은, 그러
나 그다지 오랫동안은 남아 있어 주지는 않는다.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
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短命)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 그것은 말
하자면 기적같이 와서는 행복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편연(便姸) 백설이 경쾌한 윤무(輪舞)를 가지고 공중에서 편편히 지상에 내려
올 때, 이 순치(馴致)할 수 없는 고공(高空)무용이 원거리에 뻗친 과감한 분란
(紛亂)은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처연한 심사를 가지게까지 하는데,
대체 이들 흰 생명들은 이렇게 수많이 모여선 어디로 가려는 것인고? 이는 자
유의 도취 속에 부유(浮遊)함을 말함인가? 혹은 그는 우리의 참여하기 어려운
열락(悅樂)에 탐닉하고 있음을 말함인가?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 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 곳에 와서 무엇을 시
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여,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
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이를 통제할 수 있으랴? 너희들은 우리들
사람까지를 너희의 혼란 속에 휩쓸어 넣을 작정인 줄을 알 수 없으되 그리고
또 사실상 그 속에 혹은 기꺼이, 혹은 할 수 없이 휩쓸려 들어가느 자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그러나 사람이 과연 그러한 혼탁한 와중(渦中)에서 능히 결딜
수 있으리라고 너희는 생각하느냐?  

백설의 이 같은 난무(亂舞)는 물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강
설(降雪)의 상태가 정지되면, 눈은 지상에 쌓여 실로 놀랄 만한 통일체를 현출
(現出)시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완전한 질서, 이와 같은 화려한 장식을 우리는
백설이 아니면 어디서 또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주위에는 또한 하
나의 신성한 정밀(靜謐)이 진좌(鎭座)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엿
듣도록 명령하는 것이니, 이 때 모든 사람은 긴장한 마음을 가지고 백설의 계시
(啓示)에 깊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라! 우리가 절망 속에서 기다리고 동경하던 계시는 참으로 여기 우리 앞에 와
서 있지는 않는가? 어제까지도 침울한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백설의 은총(恩寵)에 의하여 문뜩 빛나고 번쩍이고 약동하고 웃음치기를 시작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풀 포기,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풍만한 백화(百花)를 달고 있음을 물
론이요, 괴벗은 전야(田野)는 성자의 영지(領地)가 되고, 공허한 정원은 아름다
운 선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은 성화(聖化)되어 새롭고 정결하고 젊고 정숙한
가운데 소생되는데, 그 질서, 그 정밀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며 영원의 해조(諧
調)에 대하여 말한다.

이 때 우리의 회의(懷疑)는 사라지고, 우리의 두 눈은 빛나며, 우리의 가슴은 말
할 수 없는 무엇을 느끼면서, 위에서 온 축복을 향해서 오직 감사와 찬탄을 노래
할 뿐이다.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줌으로 의해서 하나같이 희게 하고 아름답
게 하는 것이지만, 특히 그 중에도 눈에 덮인 공원, 눈에 안긴 성사(城舍), 눈 밑
에 누운 무너진 고적(古蹟), 눈 속에 높이 선 동상(銅像) 등을 봄은 일단으로 더
흥취의 깊은 곳이 있으니, 그것은 모두가 우울한 옛 시를 읽은 것과도 같이, 그
눈이 내리는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공원
에는 아마도 늙을 줄을 모르는 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닐지도 모르는 것
이고, 저 성사(城舍) 안 심원(深園)에는 이상한 향기를 가진 알라바스터의 꽃이
한 송이 눈 속에 외로이 피어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저 동상(銅像)은 아
마도 이 모든 비밀을 저 혼자 알게 되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
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참된 눈은 도회에 속할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산중 깊이
천인 만장(千?萬丈)의 계곡에서 맹수를 잡는 자의 체험할 물건이 아니면 아니
된다.  생각하여 보라! 이 세상에 있는 눈으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니,
가령 열대의 뜨거운 태양에 쪼임을 받는 저 킬리만자로의 눈, 멀고 먼 옛날부
터 아직껏 녹지 않고 안타르크리스에 잔존(殘存)해 있다는 눈, 우랄과 알래스
카의 고원에 보이는 적설(積雪), 또는 오자마자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는 상
부 이탈리아의 눈 등 .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의 눈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눈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의 눈에 대한 체험은 그저 단순히 눈 오는 밤에 서울 거리
를 술집이나몇 집 들어가며 배회하는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니, 생각하면 사실
나의 백설부(白雪賦)란 것도 근거 없고 싱겁기가 짝이 없다 할밖에 없다.

 ▷ 김진섭 문학비

전라남도 목포시 남교동에 문학비가 있다. 문학에는 '이곳 목포는 1920년대
부터 한국문학을 가꾸며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 등을 남긴 청천 김진섭 선
생의 고향임' 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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