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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6 전체: 1413735

 

 김환태와 구인회

 ▷ 김환태(金煥泰: 1909∼1944)

호는 눌인(訥人), 전라북도 무주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동지사대학 예과
3년을 수료한 후 규슈제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서른 여
섯 짧은 생애였지만 1930년대 후반기 명평론가로 크게 활
약하였고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문학보다 더 고귀한 학문은 없으리라는 것과
자신은 문학을 하기 위해서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던 김환태는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평론하고 수필도 발표하다가 28세 때인 1936년에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했다.

이 해 6월 김환태는 당시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등의 주재·발행자로 이름을
떨친 시인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의 누이동생인 박봉자(朴鳳子)를 아내
로 맞이하였다. 박봉자는 김환태와 동갑의 나이로 이화여자전문학교를 마치
고 ‘여성’지 등에 글도 발표한 재원이었다.

‘여성’지에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에 같이 글을 발표한 인연
으로 소설가 김유정(金裕貞)에게서 30여통의 뜨거운 구애편지를 받기도 했
다고 전해진다.  1940년 김환태는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 교사로 취직해
서 2년간 근무후 서울 무학여고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과로가 겹쳐 폐를 앓
게 되고 43년 12월 폐병이 악화되자 무학여고를 사직하고 고향인 무주로 돌
아와 요양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1944년 5월 26일 짧은
일생을 마쳤다.

김환태의 무덤은 무주읍 당산리 모수골 만리재에 있고, 무덤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다.  김환태 작고 후 유저(遺著)로 1972년 미망인이 낸 《김환태전
집》이 있다. 문학사상사에서는 1986년 5월 25일 국립공원 덕유산 입구(나
제통문의 무주쪽)에서 문학비를 제막했다. 1988년부터는 김환태 평론문학상
을 제정하였다.

 ▷ 평론 <문예 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

문예 비평이란 문예 작품의 예술적 의의와 심미적 효과를 획득하기 위하여
대상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보려는 인간 정신의 노력입니다. 따라서 문예 비
평가는 작품의 예술적 의의와 딴 성질과의 혼동에서 기인하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순수히 작품 그것에서 얻은 인상과 감동을 충실히 표현해야 합니다.
즉 비평가는 언제나 실용적·정치적 관심을 버리고 작품 그것에로 돌아가서
작가가 작품을 사상한 것과 꼭 같은 견지에서 사상하고 음미하여야 한 작품
의 이해나 평가가 된다는 것을 언제나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문예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평가는 매슈 아놀드가 말한 '몰이해적 관
심'으로 작품을 대하여야 하며, 그리하여 그 작품에서 얻은 인상과 감동을
가장 충실히 표현하여야 합니다. 비평가는 문법가도 역사가도 아닙니다.
그는 감동하고 표현하는 예술가입니다. 작품을 정당히 평가하려면, 평가는
위대한 상상력과 감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작가와 '내면적 일치'에 들어가
같이 느끼고 사색하여야 합니다. 악의와 당파심과 이론화한 편견을 버리고
작품 그 속에 침잠하여야만 그 작품의 중심 생명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결점을 지적함도 저급한 독자를 계몽하기 위하여 또는 천재의 탈선을 막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결점을 적발할 때는 평가는 목청을 낮추
어야 합니다.(후략)

 ▷ 구인회(九人會)

구인회는 계급주의 및 공리주의 문학을 배격하고,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19
33년 결성되어 4년여 간 활동한 문학동인회이다. 처음으로 구인회를 결성한
사람은 김기림, 이효석, 이종명, 김유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정지용, 이
무영 등 총 9인이기에 <구인회>란 명칭이 붙여졌다. 처음 결성 후 얼마 지나
지 않아 이효석, 이종명, 김유영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가입하
였으며, 다시 유치진, 조용만이 탈퇴하고 김유정, 김환태가 가입하여 회원은
항상 9명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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