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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18 전체: 1592503

 

담양 두곡마을 당산제

                                                                                                            임   형

 차   례

1. 머리말
2. 마을 개관
3. 당산제
 1) 당산신
 2) 제관의 선정
 3) 제사 준비
 4) 제사의 진행
 5) 영험
4. 맺음말 

1. 머리말  

 담양(潭陽)의 원이름은 술지, 추자혜(秋子兮), 추성(秋成)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담주(潭州)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 뒤 현종 9년(1018년)에 비로소 현재의 담양(潭陽)이란 이름이 쓰이게 되고 1914년에는 인근의 창평군(昌平郡)을 통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읍 11면 296리 589반 18,755가구에 인구는 약 50,914명(2002년말 기준)이다.

 광주의 위성도시로서 생활권이 거의 광주와 닿아 있으며 유동인구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대도시 인근이므로 딸기나 메론 등 특용작물을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대나무 특산품에 가사문화권을 자원으로 한 관광산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담양에서는 현재까지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는 마을이 40여 개이며 담양읍에서는 4곳이 있다. 삼다 1구와 가산 2구는 음력 1월 14일 밤에 시행하고 있으며, 강쟁 2구는 음력 1월 그믐에, 운교리는 2월 1일에 지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이 마을들 중 강쟁 2구인 두곡마을 당산제를 현장에서 직접 조사하였다.

조사일시: 2003년 3월 2일(일, 음력 1월 그믐) 밤 10시경
조사장소: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강쟁 2구 두곡마을
조사방법: 현장 참여 조사
제보자:  한철수(남, 82세)  강해수(姜海秀, 남, 61세, 화주)
            한선수(韓善洙, 남, 59세, 이장, 381-2111, 017-604-2111)
조사자: 임형(林亨)

2. 마을개관

          <두곡마을 표지석>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강쟁리(江爭里) 2구 두곡(斗谷)마을은 담양읍에 속하지만 변두리이기 때문에 농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마을이다. 담양읍 중심부에서 광주-담양간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담양여중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 정문에서 마을 안쪽 길로 100여m를 더 들어가면 영산강을 향해 넓은 들이 펼쳐지면서 강쟁 2구가 나온다.

원래 강쟁리란 지명은 강을 뜻하는 '물 강(江)', 물줄기가 합류하여 서로 싸우는 듯 하다 하여 '다툴 쟁(爭)'을 써서 강쟁리(江爭里)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강쟁 1, 2, 3구로 분구가 되었는데 강쟁 2구가 바로 두곡마을이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산면의 강쟁리가 담양읍에 속하게 되었다.

 이 곳은 진주강씨(晋州姜氏)나 청주한씨(淸州韓氏)가 주성씨이며 강쟁 1구에서 분촌되었는데 그 분촌 연대는 대략 100여 년 전으로 본다. 강쟁리에 이름 모를 '천(天)불'이 나서 집들이 거의 다 타버렸기 때문에 인근 갈대밭에 새로 마을을 조성한 것이 지금의 강쟁 2구 두곡마을이라고 한다. 두곡마을은 지금은 50호 정도 되며 비교적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전부터도 빈궁하게 살지는 않았다. 현재는 논과 밭농사를 주로 하며 특용작물로 딸기, 수박, 메론, 고추 등을 온상재배하고 있다. 한우를 10여두 이상 기르는 집이 두 곳, 인구는 100여 명이며 젊은이는 10여명에 기독교도가 2, 3집, 불교도도 몇 집이 있어 담양 인근의 절에 다닌다.

 마을에는 마을계가 있는데 그 계책은 청주한씨인 한용선(韓用善, 1818년생)씨가 기묘년(1879년)에 성촌과 함께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두곡촌계(斗谷村契)'의 계책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두곡마을 계책>

【斗谷村契序】

鄕里之有約古也 想其約也 里統于面 面統于鄕黨正之讀法 賓主之飮 射宜無不備而其法詳具於呂氏書 我東諸先正潤色而行焉則今之惟爲者 宜可倣而行之 惟我斗谷爲村 七年邑亦數室其於斯也 歲所待後而至若守望 相助疾病扶持及合家之應 供土社之報賽有村之不可一日無者也 則契爲可已也 玆?鳩若干財約爲村契 肯幾成又蕩于無年無復可追乃與同志二三更 各出力復踵前而修之則吾已老矣 其所成就之才在諸賢勉之如何也 吾嘗聞之利者義之和也 焉吾斗谷之人長者敎焉 幼者聽焉入而孝出而悌 無惰農業無學賭博又加意於比焉則 不患比契之不修矣 其節目之詳以待契成序次爲之可也 今不盡述焉

光緖己卯 斗庵書

【節目】

一. 강신일자는 每年 春 三月 三日 冬 十月 九日
一. 每員이 각 2냥씩 거출
一. 土神祭日은 每年 仲春朔日
一. 생기정결한 사람으로 화주를 삼고 제일 전날은 목욕재계하고 제소와 축단, 倚幕 및 우물을 청소하며     화주집 앞길을 치우고  부정한 사람은 의막 밖에 머물며 제를 지낸다.
一. 신위서는 다음과 같이 한다.

土地之神神位

維歲次某月某朔日 化主幼學某姓名敢昭告于
土地之神 維比仲春 歲功云始 若時昭事 敢有不欽
酒肴雖薄 庶將齊誠 惟神監願 永奠群居 尙

一. 다음날 자시경에 대야에 손을 씻고 함께 神位前에 선다.
·降神-대축-진궤-향안전분향재배-잔반-짐주삼경-모사상재배부위
·參神 여러집사는 모두재배
·初獻 대축진궤향안전 짐주소경모상 독축재배부위
·亞獻 終獻 재배강부위
·辭神은 닭울고 나서하며 재배후 철상

一. 契員 초상시에도 백지, 술, 남초, 화목 등을 지원하고 밤을 새우고 有故時에도 문밖에서  밤새도록
      이같이 한다.
一. 喪禮時에도 일제히 계원이 상여꾼이 된다.
一. 小, 大喪에도 火木으로 밤을 지새고 초상과 같이 한다.
一. 入孝出悌하고 賞을 勸勉한다.
一. 계유년부터 을해년까지 負役을 없애고 완전한 글로 남긴다. 우리 후원들은 내 말이 아니라도 십분
     삼가고 하나라도 잊지 말라.
《光緖 己卯之月 韓用善 謹書》

3. 당산제

 당산제는 계책에 적힌대로 지내고 있는데 강쟁리 1구가 정월 보름에 지내므로(20여년전부터는 안 지내고 있음) 두곡마을은 음력 정월 말일 밤에 지낸다. 또한 명칭도 '당산제'란 명칭보다는 '토신제(土神祭)' 또는 '산제(山祭)'란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 이른바 생명의 젖줄이랄 수 있는 토지를 관장하고 지켜주는 토지신의 품격이 여타의 신보다 더 상위신이라고 여겨 이 곳에서는 다른 마을과 달리 토신제라고 부르는 것에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1) 당산신

 당산나무는 마을의 뒤쪽 언덕인 강쟁리 937번지에 소재하고 있는데, 수종은 느티나무로  2그루가 서로 엉켜있으며 수령이 150년 정도에 높이는 19m 정도 된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보호수 지정 팻말이 나무 앞에 세워져 있다. 당산등은 마을의 뒷길로 올라가는데 이 곳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제사일이 가까워지면 당산나무 주변에 금줄을 치고 당산나무 앞에는 '土地之神 神位'란 위패를 모신다.

                                  <당산과 두곡마을>

2) 제관의 선정

 이 곳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이 지나면 마을회의를 열어 당산제에 관한 상의를 하고 화주(化主)를 정한다. 생생생기정결(生氣淨潔)한 사람으로 화주를 삼는데 올해는 화주가 곧 제관이 되어 제수 준비에서부터 제사의 진행 일체를 도맡아 했다. 집안에 산고나 사고가 없어야 하며 환자나 조그마한 우환도 없어야 한다. 심지어 개, 돼지 등 가축의 새끼만 낳아도 화주를 교체한다. 화주로 정해지면 용변 후에는 반드시 목욕재계를 해야 하고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도 없을뿐더러 부부가 한 방을 쓰지도 않아야 한다. 삼가는 것이 많고 화주로서 금기가 까다로워 서로가 맡기를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비교적 식구가 단촐하고 나이가 듬직한 어른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화주는 강해수(姜海秀, 남, 61세)씨로 젊은 시절에 출타해서 외지 생활을 수 십년 하다가 5년 전에 귀향을 했는데, 남은 여생이나마 고향을 위해서 봉사할 마음으로 흔쾌히 화주를 맡았다고 한다. 진설에서부터 삼헌, 독축까지 모두 제장에서 화주가 혼자 하므로 이 마을의 당산제는 화주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제장 바로 옆에 쳐놓은 또 다른 의막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화주를 돕는다.  

3) 제사 준비

 정월 보름이 지나고 회의에서 화주가 정해지고 제를 지원해줄 청년 4-5명이 정해지면 이들은 왼새끼를 꼬아 마을 앞 출입로 네 곳에 금줄을 둘러친다.

                                                               <마을 입구 금줄>

약 4m 높이의 장대를 길 양쪽에 세우고 그 사이에 20cm간격으로 백지를 끼워두는데 새끼는 대략 35발, 창호지는 1권 정도가 든다고 한다. 당산나무 주변에도 새끼를 10발 정도 꼬아서 둘러친다. 또한 화주의 집 대문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이 때에 또한 마을 안쪽  고샅길에는 길섶에 1m 정도 간격으로 황토를 한줌씩 뿌려둔다. 황토는 뒷산(금반)에서 각 개인들이 파 와서 각자가 자기집 주변에 뿌리며 화주의 집에서 당산나무에 이르는 길까지 도 황토를 한줌씩 놓는다. 전에는 풍물이 있어서 미리 연습도 하고 했으나 지금은 없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함께 참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약식으로 진행되는 편이라고 한다.

                 <화주 강해수씨집 대문의 금줄과 마을 골목길의 황토>

 올해 이장을 맡은 한선수(韓善洙, 59세)씨의 말에 의하면 마을회의에서 선정된 깨끗하고 흠결이 없는 소수의 몇 사람이 주도적으로 당산제를 주관하고 있지만, 제사에 드는 비용만큼은 출향가족까지 포함해서 인구전(人口錢)으로 집집마다 1인당 1,000원씩 거출하는데 보통 30만원 정도를 마련하며 경비를 쓰고 남은 것이 있으면 마을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제수준비는 주로 담양장(2,7장)을 이용한다. 이장과 화주가 시장을 보며 부정탄다 하여 물건값을 흥정하거나 깎지도 않는데 상인들도 당산제물이란 짐작이 가면 알아서 비싸게 받지 않는다고 한다.

 제물준비는 화주의 집에서 하며 화주는 소변만 봐도 목욕을 한다. 추운 날 화장실 가기가 싫어서 아예 금식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제일이 가까워지면 제장 주변에 비닐하우스 2동을 4-5평 크기로 짓는다.

                                                    <당산 주변 비닐하우스 의막>
 
당산나무가 가까운 위쪽은 제관만 들어가고, 아래는 참례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준비해 온 제물을 화주가 진설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나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 추울 때가 많기 때문에 전부터 의막은 꼭 지어 왔다고 한다. 전날에 화주는 목욕재계하고 제소와 축단, 의막 및 우물을 청소하고 집 앞길을 치우며 근신하면서 지낸다. 

4) 제사의 진

 그믐날엔 화주의 집에서는 제물을 준비하고 해질녘이 되면 마을 젊은이들은 마을회관에 모여서 장작난로를 피우고 제물이 오기를 기다린다. 제물은 리어카에 실어 두고 회관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제물 진설>
 
 밤 10시경이 되면 참례한 사람들과 화주는 제물을 당산제장으로 옮긴다. 특별히 사고가 없거나 부정하지 않은 사람만 참례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7-8명이 참여하였다. 부정한 사람은 의막 밖에 머물면서 제를 지켜본다.

 당산제장에는 비닐하우스로 의막을 만들어 마을에서 전기선을 끌어들여 백열전구를 달아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제장에 설치한 의막 안에서 가스레인지로 바로 밥과 국을 끓여서 올린다. 멧밥과 국이 식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진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화주가 하며 20여분 정도 걸린다. 별도로 제기를 준비하지 않고 떡시루나 탕, 나물이나 과일 등을 큰 그릇째 그냥 놓는다.  

 제는 보통 자정까지 기다려 12시가 넘으면 시작하는데 이 번에는 때아닌 겨울비가 많이 내려 조금 이른 시간인 11시 10분 경에 진행을 하였다. 지금은 초헌, 아헌, 종헌을 맡는 제관이 따로 없고 화주가 혼자 도맡아 하며 축관도 별도로 두지 않는다. 제사의 순서는 강신(降神)-초헌(初獻)-대축(大祝)-아헌(亞獻)-종헌(終獻)-사신(辭神)-소지(燒紙)의 순이며 소지는 참례한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각자 무병건강 등의 소원을 빌며 올린다.

                                                 <소지>
                   

   <祝文>

土地之神神位
維歲差 癸未年 一月甲寅 三十日甲戌 朔
化主 幼學 姜海秀 敢昭告于
土地之神 維比仲春 歲功云始 若時昭事
敢有不欽 酒肴雖薄 庶將齊誠 惟神監願
永奠群居 尙
饗 

 제사를 모두 마치면 참여한 사람들은 백설기떡을 백지에 싸서 집으로 갖고 가며 대추나 밤 등 과일도 이바지로 갖고 가기도 한다. 제사에 노인들은 참례를 안하고 주로 젊은 사람들이 하는 편이다. 음복을 할 때는 멧밥으로 즉석에서 김밥을 말아 김치나 나물과 함께 먹기도 한다.

 제사 다음날 아침에는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준비해 놓고 마을노인들을 모셔 음식대접을 한다. 제가 끝난 후에도 마을 곳곳에 놓인 황토나 당산나무에 둘러친 금줄은 그대로 두나, 마을 입구나 화주집 대문에 쳐 둔 금줄은 모두 걷는다. 

5) 영험

 옛날에 강쟁 1구에 사는 사람이 당산나무 주변의 밭을 벌고 있었는데 당산나무 그늘이 져 농작물에 피해를 줌으로 밭쪽으로 뻗은 가지를 베어냈는데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또한 당산신이 영험이 있어 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하는데 아들이 없는 사람이 둘이나 자청해서 화주가 되어 제를 정성껏 올렸더니 모두 아들을 얻었다고도 한다.  

4. 맺음말 

 두곡마을은 광주와 인접해 있고 담양에서도 읍내에 속한 마을이어서인지 제수의 준비 정도나 당산제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수가 비교적 적은 편으로, 타 지역에 비하면 제를 약식으로 시행하고 있다. 때마침 제사일 저녁에는 겨울비가 내렸으나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한 대로 차분하게 제를 진행하였다. 마을의 선조들이 마을계책에 제장 주변에 의막(倚幕)을 칠 것을 명시해 놓은 바대로 제사에 대비해 제장 주변에 비닐하우스를 쳐 놓은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비나 눈, 추위에 대비해 미리 유비무환의 자세로 임할 것을 강조한 선인들의 예지를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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