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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1 전체: 1428723

 

 문병란의 직녀에게

 ▷ 문병란(文炳蘭: 1935-2015.9.25)

전남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출생.
1960년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63년 『현대문학』에 「가로수」, 「밤의 호
흡」, 「꽃밭」 등이 추천되어 등단. 순천고, 광
주일고, 조선대에서 교직 역임. 『원탁시(圓卓
詩)』 동인으로 활동. 1979년 전남문학상, 1985
년 요산(樂山)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는 『문
병란 시집』(삼광출판사, 1971), 『정당성』(세
운출판사, 1973), 『죽순밭에서』(인학사, 1977),
『땅의 연가』(창비사, 1981), 『무등산』(청사
출판사, 1986) 등이 있다.  

그는 1973년 시집 『정당성』을 내놓은 이후
시적 노선이 더욱 분명해졌다. 당시의 유신 독
재 정권과 가진 자들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
는 일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사명이며
존재 이유로 생각한 것이다.  그는 양심적인
시인으로서 홀연히 저항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정신은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겨울 산촌」,「고무신」,「살인자」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반체
제 저항 시인으로서 알려지게 된다.

그는 민중 지향이라는 뚜렷한 시적 목표와 방향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시어는 민
중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시인 이시영의 말대로 그의 시어는 "별다른 지식 없이
도 한번 읽으면 이내 그 뜻을 알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언어"이고, 그것은 "민중
의 생생한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강한 언어다. 이러한 '쉬운 시 쓰기'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문학의 기법이며, 지식인을 위한 모더니즘 시를 극복하는
그의 문학적 방법이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그의 민중시는 1970년대에 내놓
은 시집 『죽순밭에서』(1977), 시문집 『호롱불의 역사』(1978), 농민시집『벼들
의 속삭임』(1980)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중 『죽순밭에서』는 1979년에 도서
출판 한마당에서 중간되었는데, 정부는 이 시집이 "외설스럽고 민족 정신을 부정
했으며 일본 국기를 모독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린다. 저자
문병란은 이에 대해 25쪽에 걸쳐 그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판금 조치를 철
회하라는 항의서를 당국에 제출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그 때가 유신정권 말기였다.

 ▷ 직녀에게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이 시는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과 다시 만나고 싶은 애타는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 일년에 단 한 번 칠월 칠석날이
라도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을 통해 분단된 우리 민족도 모든 갈등과 대립
을 털어버리고 다시 만나자는 통일 지향적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가수 김원중에 의해 서정적인 노래로도 불려지는데 일설에는 북한에서도 인기곡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 작가의 말 - 민족문학의 나아갈 길

민족문학이라면 우선 우리민족(한민족)이 한국의 역사 속에서 삶을 영위하며 한국어
로 한국인의 생활 감정이 담긴 정서로 창작한 문학 작품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상고시대부터 단군의 후예인 부여 예 옥저에서도 영고·동맹·무천 5월제 시월제 등 농
경사회 부족국가를 배경으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 동이(東夷)족의 문화, 동방
고문화국의 전통 속에서 신라 백제 고구려를 거쳐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향가
경기체가 고려속요 시조 가사 고대소설 등 국문학 작품과 근대 개화이후 창가 신소
설 현대 자유시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문학 즉, 민족문학은 민족의 삶(흥망
성쇠) 과 함께 하면서 21세기 초두 5천년의 역사를 쌓았습니다. 특히 조선조 후기 왜
의 침략을 받아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될 망국치하에서 항일저항문학의 뿌리를 가지
고 민족문학의 당당한 체질을 형성했습니다.

1945 일본 패망 후에도 미·소가 이 땅을 분할 점령하여 좌우익 이데올로기 대결장으
로 분단시킨 뒤 2차대전 버금가는 한국전쟁 3년의 고통을 안겨 주었고 그 연장선상
인 휴전협정 50년의 긴 세월은 지구촌 최고의 불안전 국가를 존속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민족문학 그 성격은 제국주의의 쇠사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다시 신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시대 50년이라는 점에서 반제(反帝)
반외세(反外勢)-동학년부터 이어온 척양척왜(斥洋斥倭)- 그에 따른 반전 반핵, 민족
적 자주성에 의한 독립과 통일, 망가진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민족통일 완성(除暴救民)
외세나 그 외세를 등에 업은 反민족 세력들(친일파, 친미파, 친러파 기타 등등)의 폭정
과 오리정치 부정부채 척결 등을 내세울 수 있는 바, 바로 이것이 민족문학의 이념이며
생활감정이고 정서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근대이후엔 을사조약, 한일합방에 저항한 의병투쟁 애국운동 3·1운동 분
단극복을 위한 비극적 전쟁 6.25(수원수구(誰怨誰咎)보다 외세의 사주에 시행착오적
이데올로기 대리전쟁).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반유신, 4.19·5.18 등의 작고 큰 역사
적 사건과 함께 성장해 온 것이 우리의 민족문학입니다. 이와 같이 그 역사와 삶의 토양
을 파악했다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자명합니다.

이 민족 외적 내적 모순, 즉 외세 침략모순과 내적 계급모순을 극복해가면서 민족의 큰
숙원인 자주독립·민족통일과 연결되는 그러한 삶 그러한 정서가 형상화되는 시와 소설
등의 문학 창작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1970년대의 민중문학, 노동자나 농민이나 도시빈민을 인식한 기층민중의 애환과 고난
을 표현한 문학과 외세와의 갈등, 일제나 미국과의 문제,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새로운 한반도의 분쟁이나 통일운동 남북한 혈연잇기 동질성 회복의 책무를 띠고 있으
며 계급모순의 연장인 지배계급의 횡포, 반공주의에 의한 좌익탄압 압살사건, 권력장악
을 위한 군부독재 그 부산물인 5.18 민중 살상과 항쟁, 지역갈등을 악용한 구정권의 낡
은 정치 청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데는 아직도 민족주의적 리얼
리즘이 그 중요한 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단의 장기화 속에서 남북한의 이질적 문학과 문학은 크게 거리가 생겼습니다.
북의 문학과 남쪽의 문학의 만남. 구미열강 특히 미국을 배경으로 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범람은 민족문학의 노선을 흔들고 있고 독자와의 이해관계 혼란으로 그 새로운 무장이
요구되고 있기도 하지요. 가령 예를 들면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성의 자유 추구라든가,
서구형 이혼급증 퇴폐와 타락의 합리화 현상 등 미풍양속, 도덕붕괴는 기존의 민족주의
적 이념이나 노선확인만으로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내면에 대한 다양한 추구, 문명
의 이기에 의한 생활의 변화, 의식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작품의 테크닉이 요청된
다고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섣부른 관념이나 목적의식 노증으로 경화될 수 있는 이데
올로기적 수단화를 경계하되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갱생의 에네르기가 되어야 합니다.
반(反)모더니즘보다 모더니즘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민족적 흥취와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민족문학은 민족문제 처방의 유일한 보약이며 민족적 정신건강을
지켜줄 명약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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