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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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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의 사암문집

박순(朴淳: 1523-1593)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이다.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죽현에서 개성유수 박우(朴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눌재 박상(朴祥)의 조카이기도
하다. 태평관(太平館) 근처(중구 서소문동)에 살았으며 명종 8년(1553)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성균관 전적·홍문관 수찬·교리·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등을 역
임하고 1561년 홍문관 응교로 있을 때, 을사사화를 주도한 임백령(林百齡)의 시호 제
정을 둘러싸고 명종비 문정왕후의 아우인 당대 권력가 윤원형과 마찰이 있었다. 이 일
로 파면되어 향리인 나주로 돌아가 은거하다가 그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한산 군수를
지내고 홍문관 직제학·승정원 동부승지·이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565년 대사간이
되어 대사헌 이탁(李鐸)과 함께 문정왕후의 친동생인 윤원형을 탄핵함으로써 소윤(小
尹) 일파를 공격한 주역이 되었다.

홍문관 대제학에 제수되려 할 때 20세 연상이요 학덕이 있는 이황을 제학으로 두고 자
신을 대제학에 임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상소해서 이황과 자리를 바꾸어 제학으로
내려앉으니 한때 사림의 미담이 되기도 했다.

대사헌·직제학·이조 판서 등을 거친 뒤 선조 5년(1572) 우의정이 되고 그 뒤 좌의정을
역임한 뒤에 1579년 영의정에 올라 약 15년간 봉직하였다. 이이(李珥)가 탄핵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다가 도리어 탄핵을 받았으며 동서분당이 확실하게 되자 스스로 관직
에서 물러나 영평 백운산에 암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이이를 두둔하였으므로 서인으로 추정되며, 서경덕(徐敬德)에게 학문을 배워 성리학
에 정통하였고 특히 《주역(周易)》에 밝았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는 송설체(松雪
體)에 능하였으며 시에도 뛰어나 당시(唐詩) 원화(元和)의 정통을 이었다. 중년에 이
황(李滉)에게서 사사받았고 만년에는 이이·성혼(成渾)과 깊이 사귀어 ‘이 세 사람은
용모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다’라고 할 정도였으며 동향 출신인 기대승(奇大升)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제자로서 최경창·백광훈·이달 등이 있다.

나주 월정서원, 광주 월봉서원, 개성 화곡서원, 영평 옥병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사암집(思菴集)》 7권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사암문집 목판각

사암 문집은 7권 3책의 목판본으로 초간은 인조 26년(1648) 자손들이 편집 간행하였
으며, 철종 8년(1857)에 중간되었다. 권1∼3에 시 583수, 권4에 계(啓) 2편, 서 2편,
잡저 4편, 비명 7편, 권5∼7은 부록으로 행장, 시장(諡狀), 신도비명, 축문, 소(疎), 제
문, 찬, 묘문, 서후(書後), 발(跋), 시, 만사(輓詞)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 가운데
「논윤원형계」(論尹元衡啓)는 윤원형 거세의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답이이율
곡서」(答李珥栗谷書)는 율곡 이이와 이기론(理氣論)을 논의한 것이고, 「퇴계선생
묘지명」은 퇴계 이황의 일대기를 적은 것이다. 이외에 「국조보감」(國朝寶鑑),「홍
재전서」(弘齋全書),「조야기문」(朝野奇問)과 서간문, 상소문 등에서 저자에 관한
사항을 모은 「제가기록」(諸家記錄)등이 있다.

이 목판각의 원집은 2권으로 17세기 초 서필원(徐必遠 1614∼1671년)에 의해 전주
에서 판각되었으나 판본이 훼손되고 전하지 않아 눌재집(訥齋集)을 중간(重刊)하고
나서 사암의 유집)과 고시를 수집하여 원집과 함께 판각하였다. 그 후 1850년 홍직
필(洪直弼)이 여기에 발문을 썼다. 크기는 가로 35cm, 세로22cm, 두께 4cm이며 모
두 180매이다. 이 목판각은 오랫동안 조정에 있었던 그의 경륜을 정리한 것으로 사
료적 가치가 매우 큰 자료이다.

▷ 유적지

사암 목판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산85에 있으며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그의 묘와 옥병서원은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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