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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1 전체: 1428723

 

목포의 소설가 박화성

 박화성(朴花城, 1904.4.16∼1988.1.30)  

호는 소영(素影). 1904년 목포에서 부친 박운단
과 어머니 김운선 사이의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
나 1926년에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29년 일본여
자대학 문학부를 수료하고 작가생활에 들어갔다.
1961년부터 1973년까지 문인협회이사, 1965년에
는 여류문인협회 회장에 선임되었고, 1966년 대한
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한편 1964년부터1973
년까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을 겸하고,
1968년에는 여류문인회장, 1972년에는 동고문이
되었다. 1974년 펜클럽 고문, 같은 해 한국소설가
협회 상임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88년 서울 자택에서 별세했다.
또한 소설 <황구의 비명> 희곡 <만선> 등의 작가인 천승세가 그의 차남이기도 하다.

예술원상 ·한국문학상 ·목포시 문화상 ·이대(梨大) 문화공로상 ·은관(銀冠) 문화훈장
등을 받았으며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백화(白花)> <사랑> <고개를 넘으면> <하늘이
보이는 풍경> <내일의 태양> <타오르는 별> <거리에는 바람이> 등 18편, 중편 <햇볕
내리는 뜰악>, 단편 <하수도 공사> <홍수전후(洪水前後)> <잔영(殘影)> <휴화산(休
火山)> <한귀> < 고향 없는 사람들>, 수필집 <추억의 파문> <순간과 영원 사이>, 자
서전 <눈보라의 운하>가 있다.

  작품 세계

박화성의 작품은 대체로 재난을 재난 그 자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
한 인위적인 가난이 극단화되는 정점인 동시에 주인공이 주체적인 행동의지로 나아
가는 심리적 전환의 과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작품은 최서해의 소설
에서 나타나는 결말의 공식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1930년대에 발표한 <하수도공사> <홍수전야> <논 갈 때> <한귀> <고향없는 사람들>
등의 단편소설은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비참한 모습을 사
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한귀>는 가뭄이라는 극단적인 재난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삶을 어떻게 극단화시키는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묘
사와 함께 현실에 대한 진지한 비판정신으로 인하여 그의 소설은 동반자적 경향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장편 <고개를 넘으면> <하늘이 보이는 풍경> <내일의 태양> <타오르는 별> <거리에
는 바람이> 등 해방 후 작품들은 대체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격하게 변
화하는 세대의 차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 작가의 회상기

...일주일에 월요일과 금요일 두번씩의 행사인데 이 중에서 뛰어나 장원을 하게 되면
그때 [개벽]이라는 잡지사에서 발행되는 여성잡지 [부인]에 실리게 되는 특전을 받
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세번을 장원을 하여 활자화된 글이 발표되었건만 어렸던 탓일
까 기쁜 줄도 몰랐었다. 세번째〈정월 초하루〉를 읽은 조운씨와 동료 교원들이 나더
러 소설에 소질이 있으니 소설을 써 보라고 하여 〈팔삭동〉이라는 단편을 (이것은 모
방이 아닌 최초의 창작이었다) 써보이니까 조운씨가 칭찬하면서 또 한편을 쓰라고 하
기에 〈추석전야〉라는 단편을(19세때) 썼더니 조운씨는 나도 몰래 그때 계룡산에서
휴양중에 있는 춘원선생께 가서 그것을 보였고, 춘원선생은 1925년 [조선문단] 1월
호에 그것을 추천하여 비로소 신생아가 되었다...

 박화성 문학기념관

목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목포시 대의동 2가 1-5번지, 노적봉 아래에 박화성 문
학기념관이 있다. 사적 제289호이기도 한 우리나라 여명기의 준르네상스식 우아한 건
물에 아담하게 마련된 이 문학기념관은 고인의 육필원고, 저서, 근대문학 태동기의 고
본들, 그리고 생활유품들을 전시하여 본격적인 문학의 산실로 그 모습을 갖추었다.

기념관(목포문화원), 자택사진(1936-62년 살았던 용당동 986번지, 세한루), 삼학도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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