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처음으로

  나의문학기행   서예감상   Site Map   제작자   E-Mail

Untitled

  ■ 고대의 남도문학

  ■ 고려의 남도문학

  ■ 조선의 남도문학[1]

  ■ 조선의 남도문학[2]

  ■ 조선의 남도문학[3]

  ■ 조선의 남도문학[4]

  ■ 조선의 남도문학[5]

  ■ 현대의 남도문학[1]

  ■ 현대의 남도문학[2]

  ■ 현대의 남도문학[3]

  ■ 현대의 남도문학[4]

  ■ 현대의 남도문학[5]

  ■ 남도 민속기행

  ■ 남도 역사기행

  ■ 남도 정자기행

  ■ 남도 사찰기행

  ■ 남도 맛기행

  ■ 남도 섬기행

  ■ 남도 산기행

  ■ 남도 강기행

  ■ 남도 공원기행

  ■ 5·18과 문학

  ■ 학습자료실

  ■ 아름다운 한글

  ■ 이달의 세시풍속

  ■ 봉사활동

  유머게시판

  자유게시판

  ■ 글 남기기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법정의 무소유

 ▷ 법정(法頂: 1931- 2010 )

전남 해남 출생. 목포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전남
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했으나 3학년 때인 1954년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56년 7월에 사미
계, 1959년 3월에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리고 1959년 4월 15일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화상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
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였다.
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뒷산의 암자인 불일암에
서 수도 정진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하
였고 1993년 시민운동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소리없는 나눔을 실천
했으며, 1996년 김영한씨로부터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12월
길상사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을 빌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
을 일구며,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현하고 있는 법정스님은 30년
이 넘는 침묵과 무소유의 자세로 일관하여 순수한 정신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저서로는 <무소유> <서있는 사람들><산방한담,>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 인도 기행><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물소리 바람소리>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등의 수필집
과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가 있고, 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
(禪家龜鑑)> <숫타니파나>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法句經)> <因緣이
야기><신역 화엄경 >등이 있다.

 ▷ 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
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料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
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이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
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 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 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
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아
마음에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
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가정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가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마만큼 많이
얽히여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
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 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
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
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
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두
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다.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
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蘭)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 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찬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이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와 안타까와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 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생생한 기운이 빠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 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 산철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
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盆)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
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
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
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 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끈임 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 한정도 없고 휴
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
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
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직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盟邦)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
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
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 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
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향(向)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
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뜯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
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
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관념(所有觀念)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
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
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
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驛吏)이니까.
                  
이 작품은 작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괴로움과 번뇌는
어떤 것에 집착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는 수필이다. 인간의 소유욕은 무한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가지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에 의해 괴로움과 번뇌가 생겨
나고, 소유함으로써 그것에 얽매이고 만다. 인간의 역사는 자기 몫을 위해 끊
임없이 싸우고 있는 소유사(所有史)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작자는 소
유욕을 버림으로써 그것보다 더 큰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을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평범한 마음 자세 가운데 삶의 깊은 진리를 스스로 터득하는 모습이 잘 드러
나 있는 글이다.

 ▷ 불일암 가는길

불일암은 송광사 제7세 자정국사(慈靜一印, 1293∼1301)가 창건한 암자로
얼마 전까지 자정암(慈靜庵)이라 불렀다. 송광사에서 감로암을 지나 왼쪽
길로 300m쯤 올라가면 고개 위에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곧장 앞으로 산 허
리를 타고 500m정도 더 가면 암자가 나온다. 불일암은 여러 차례 고쳐지었
으며 한켠에 자정국사 부도가 제법 훤칠한 모습으로 서있다. 2채의 건물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어울린다.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