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처음으로

  나의문학기행   서예감상   Site Map   제작자   E-Mail

Untitled

  ■ 고대의 남도문학

  ■ 고려의 남도문학

  ■ 조선의 남도문학[1]

  ■ 조선의 남도문학[2]

  ■ 조선의 남도문학[3]

  ■ 조선의 남도문학[4]

  ■ 조선의 남도문학[5]

  ■ 현대의 남도문학[1]

  ■ 현대의 남도문학[2]

  ■ 현대의 남도문학[3]

  ■ 현대의 남도문학[4]

  ■ 현대의 남도문학[5]

  ■ 남도 민속기행

  ■ 남도 역사기행

  ■ 남도 정자기행

  ■ 남도 사찰기행

  ■ 남도 맛기행

  ■ 남도 섬기행

  ■ 남도 산기행

  ■ 남도 강기행

  ■ 남도 공원기행

  ■ 5·18과 문학

  ■ 학습자료실

  ■ 아름다운 한글

  ■ 이달의 세시풍속

  ■ 봉사활동

  유머게시판

  자유게시판

  ■ 글 남기기

 2001/8/12부터
 오늘: 6 전체: 1413735

 

변이중과 화차

변이중(邊以中: 1546-1611)  

본관은 황주(黃州). 자는 언시(彦時), 호는 망암(望庵). 택(澤)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
마을에서 태어나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7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에는 전라도 소모어사
(召募御使)가 되어 군비 수습에 힘썼다. 그 뒤 조도사(調度使)가 되어 누차 전공을 세
우는 한편, 왜군의 조총을 능가할 수 있는 화차를 구상하여 종제인 변윤중의 도움을
받아 화차 300량을 제작하였다. 이 화차는 임진왜란 시 3대 발명품의 하나로 권율장
군에게 40량을 보내어 행주대첩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경주 탈환
전과 해상에서도 사용하였다.

1603년 함안군수를 지내다가 61세 되던 겨울에 고향인 장성 장안 땅에 내려온 그는
여러 벗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후배들을 길렀으며, 뜻한 바 있어 이퇴계, 이율곡 등의
향약을 본받아 향헌(鄕憲)을 만들어 고을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권유하였다. 성리학과
경학에 밝았으며, 군사전략에도 밝아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그
는 〈총통화전도설(銃筒火箭圖說)〉과 〈화차도설(火車圖說)〉에 의거하여 화차를
제조한 공로는 우리나라 과학사에 있어서 커다란 업적이었다.

강항(姜沆)이 지은 묘지명과 이정구(李庭龜)가 지은 묘갈명 등에서 그의 학문과 인품,
뛰어난 전략과 창의성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뒤에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으
며, 장성 봉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망암집》이 있다.

화차

변이중이 만든 화차는 위력있는 병기로써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와 더불어 왜적을 쳐부수는데 큰 공헌
을 하였다. 별로 넉넉하지도 못한 재산을 모두 바쳐서
평소에 익혀오던 병서의 지식으로 연구와 실험을 거듭
하여 화차를 만들어냈으며, 언제나 나라의 위기를 미리
방비하기 위하여 연구에 골몰하였기에 어려움을 무릅
쓰고 화차와 같은 훌륭한 병기를 만들 수가 있었던 것
이다. 또한 《망암집》에 화차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해
놓은 〈화차도설〉을 비롯하여 18가지의 병기 만드는
법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첫 손에 꼽히는 국방 과학의 기록이며 귀중한 유산이
되고 있다.

그는 화차 발명에 이어 전라도 소모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였고, 조도사가 되어 군량미 30만 섬을 조달하
였을 뿐만 아니라, 양천에 주둔해 있을 때, 묘책을 써
서 왜적을 물리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공
을 세웠다. 화차를 이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던 행주
산성이 성역화되어 기념관이 세워지고, 화차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봉암서원에도 화차와 총통이 복원 전시되어 있다.

봉암서원(鳳巖書院)

장성군 장성읍에 있으며 전남도 기념물 제 54호로 지정되어 있다. 1697년(숙종 23)에
창건하여 변이중(邊以中)의 위패를 모셨고, 그 후 변경윤(邊慶胤) 윤진(尹軫) 등을 배
향한 서원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984년 준공 때 변윤중
(邊允中)을 추가 배향하였다. 서원은 내삼문, 강당, 외삼문이 일직선으로 정연하게 배
치되었고 서원 내부에는 제사를 모시는 곳인 종앙사(宗仰祠)가 있으며, 강당인 성경
당(誠敬堂),  훈덕재(薰德齋)와 경의재(景義齋) 등의 동서재가 있다.

                                     <봉암서원과 추향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