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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생명파 미당 서정주

 서정주(徐廷柱, 1915.5.18~2000.12.24)   

호는 미당(未堂).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1929년 중앙 고보에 입학
했으나 자퇴하고 1931년 고창 고보에 편입학했다. 이어
서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수료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고, 김광균·김달진·김동인과 동인지 <시
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였다. 1948년 동아일보 사
회·문화 부장으로 있다가 문교부 예술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46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를 결성하여 시
분과 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1950년에는 종군 위문단을 결성하였고 1954년에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조선대학교, 서라벌 예술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9∼19
79년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이후
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를 지냈다. 1971
년 현대시인협회 이사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한국 문인 협회 부이사장,
1977년 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년 <문학정
신>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다.

저작으로 <한국의 현대시> <시문학원론> <세계민화집>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산호>(1953), <신라초>(1961), <동천> (1969)
<국화 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1975), <노래>(1984),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
(1987), <팔할이 바람>(1988), <산시(山詩)>(1991),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5·16 민족상 등을 받았으며, 2000년 운명한
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 미당의 시집들

화사집(1938) :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 토속
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원죄 (原罪)를 노래함.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고 그 운명적 업고(業苦)를
<문둥이> <뱀>을 통해 울부짖었다. 이후 미당은 '한
국의 보들레르'로 불림.

귀촉도(1946), 서정주 시선(1955) : 원숙한 자기 성
찰과 달관을 통한 화해. 동양적 사상으로 접근하여
재생(再生)을 노래. 민족적 정조와 그 선율(旋律)을
읊었다.

신라초(1960, 정음사) : 불교 사상에 관심을 보여 주
로 불교국 신라에서 시의 소재를 얻음. 선적(禪的)인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 구원을 시도하고 새로운 질서
를 확립함.

동천(1968, 민중서관) : [신라초] 시대보다 더 불교에 관심을 두고, 신비주의에 빠져
드는 시기이다.

질마재 신화(1975, 일지사), 떠돌이의 시(1976) : 토속적이며 주술적인 원시적 샤머
니즘을 노래하며, 시의 형태도 산문시, 정형시로 바뀌게 된다. 대표작 <신부(新婦)>
흔히 '생명파, 혹은 인생파'로 불림.

  국화 옆에서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온갖 고뇌와 시련을 거쳐 도달한 인생의 원숙한 경지를 국화꽃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
이다. 한 송이의 국화가 피어나기 위해 봄부터의 소쩍새의 울음과 한여름의 먹구름
속에서의 천둥의 울음, 그리고 가을날의 무서리의 내림, 나의 잠들지 못함 등이 있었
다고 보는 것은 불교 사상에서의 연기론(緣起論)을 바탕으로 한 생각이다. 이 시에서
의 '국화꽃'은 원숙한 아름다움을, '소쩍새'는 안타까움을, '천둥'과 '먹구름'은 고뇌와
시련을, '뒤안길'은 번거로운 현실의 역정에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번뇌와
불안, 초조 등을, '거울'은 자아 성찰, 인생에 대한 관조 등을, '무서리'는 마지막 시련
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이 시는 서정주 초기시에 보이던 강렬한 생명의 솟구침이 가라 앉고, 화해와 달관의
세계로 나아간 1950년대 작품이다. 1954년경 조선대학교 교수로 있었던 그는 6.25의
상처와 물질적 궁핍이 극심한 가운데 무등산(無等山)의 크고 의젓한 자태를 삶의 모
형으로 삼아 썼다. 가난이라는 것은 우리 몸에 걸친 헌 누더기 같은 것일 뿐 그 속에
있는 몸과 마음의 근원적인 순수성까지를 덮어 가리지 못한다는 것이 작품 전체를 떠
받치는 바탕이다.

 ▷ 추천사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 듯한(뇌이 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고대소설 <춘향전> 속의 '춘향'이의 독백 형식으로 시적 모티프를 차용한 시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원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자신을 제약
하고 있는 현실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 이상적 삶을 동경하지만, 다시 현실의
굴레 속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그네'하는 상징물을 통해 표현했다

 유적지

전북 고창군 선운사 입구에 육필원고를 확대하여 '선운사동구'를 새긴 시비가 있고,
그의 생가는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질마재)에 있으며 고향 마을 초등학교 폐교부지
에는 새로 단장한 서정주문학관이 2001년에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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