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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향가 서동요

 ▷ 작품

 <원문>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卵乙抱遣去如

 <해석문>

善花公主님은
남 몰래 짝 맞추어 두고
薯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서동요는 도솔가, 헌화가, 풍요 등과 함께 4구체 향가이며 신라 진평왕
때 작품으로 현전 향가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일종의 참요(讖謠)이자 동요(童謠)적인 성격을 띤 이 작품은 백제의
무왕이 어린 시절에 지었다고 한다.   

 배경 설화

 이 노래는 <삼국유사 권2 무왕조>에 기록되어 있다.

백제 제 30대 무왕의 어머니는 홀몸이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다가 그 못의 용과 통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도량이 커서,  마를 캐어 팔아서 가계를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서동
(薯童)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인 선화가
재색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 서울로 가서 아이들에
게 마를 주어 유인한 뒤 이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삽시간에 서러벌 장안에 퍼진 노래가 대궐에까지 들어가게 되자 대신들은
왕께 간하여 공주를 멀리 정배 보내기로 한다. 공주가 귀양살이를 떠나려
할 때 왕후는 순금 한말을 주어 보냈다 한다. 공주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궁에서 쫓겨나자 기다리고 있던 서동이 시위하여 함께 백제로 넘어가 공주
를 아내로 맞게 되었으며, 그 후 서동은 자라서 백제 무왕이 되었다고 한다.

  유적지

 <익산 미륵사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金馬面) 기양리(箕陽里)에 있는 익산 미륵사지는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며 국보 제11호
인 동양 최대의 미륵사지 석탑이 있다. 목탑의 양식을 띠고 있는 이 탑은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건립연대도 오래되고 규모도 원래 7층석탑으로
거대한 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일제강점기 때, 붕괴가 우려된다고
콘크리트를 발라 놓아 훼손이 심하다.

 <부여 궁남지>

남지는 사적 제135호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東南里)에 있는데
‘마래방죽’이라고도 한다. 부여읍에서 남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으며
동쪽에는 초석(礎石)이 남아 있고, 주변에 옛 기와가 많이 산재하여 있다.
또 부근에는 대리석을 3단으로 쌓아올린 팔각형의 우물이 있다.

이 궁남지는 백제 무왕(武王)의 탄생설화와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
(龍神)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
공주
(善花公主)와 결혼한 서동(薯童)이며,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화는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
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의 조경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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