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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청허당 서산대사

서산대사(西山大師: 1519-1604)

조선 중기 승려·승병장. 속성은 최씨(崔氏),
이름은 여신(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
허(淸虛), 별호는 백화도인(白華道人)·서산대
사(西山大師)·풍악산인(楓岳山人). 어려서 부
모를 여의고 양부(養父) 이사증(李思贈)에게
서 자랐는데, 과거에 낙방하자 지리산에 입산,
숭인(崇仁)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그 뒤 영관(靈觀)의 법을 이어받았으며 1549년
(명종 4) 승과에 급제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
兩宗判事)가 되고 봉은사(奉恩寺) 주지를 지
냈으나 56년 승직을 그만두고, 금강산·묘향산
등지를 편력하였다. 89년(선조 22) 정여립(鄭
汝立)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투옥되
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명에 따
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
어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승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제자 유정(惟政;사명대사)은 금강산에서,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승군을 모았고 자신은
문도 1500명을 모아 이를 총지휘하여 명나라 군
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 공으로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
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俊敎普濟登階尊者)라는
최고의 존칭과 함께 정2품 당상관의 직위에 올랐다.

94년 유정에게 병사(兵事)를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成寂庵)에서 여생을 보내다 세속
나이 85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교(敎)를 선(禪)의 과정으로 보아 선종에 교종을 포섭
함으로써 선·교를 일원화하였으며, 유(儒)·불(佛)·도(道)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삼
교통합론의 기원을 이룩하였다. 제자 가운데 유정·언기(彦機)·태능(太能)·일선(一禪)
등은 휴정 문하 4대파를 이루었다. 해남(海南) 표충사(表忠祠) 등에 배향되었다. 저
서로 《청허당집(淸虛堂集)》, 편저로 《선교결(禪敎訣)》 《선교석(禪敎釋)》 《운
수단(雲水壇)》등이 있다.

서산대사는 갑진년(甲辰年) 1월 23일 입적하기 전에 유촉하기를 '내 의발(衣髮)을
해남 대흥사에 전하라"하였다. 제자들의 말하기를 "문도가 1천여 있고 묘향산 또한
명승인데 어찌하여 벽지해우(僻地海隅)에 전하라 하십니까?"하니 서산대사가 말하
기를 "하나는 그곳이 기화이초(寄花異草) 편시광경(片時光景)하고 포백숙율(布帛
菽栗)이 항구하며 월출산과 달마산 천관산 선은산이 위호(圍護)하고 수류구곡(水
流九曲)하니 만세불훼(萬歲不毁)의 땅이요, 하나는 왕화미급(王化未及)의 땅이라
나라의 관심을 받으라는 것이며, 하나는 처영(處英) 및 제자들이 모두 남녘에 있
고 내가 출가한 곳이니 소귀처(所歸處)함이 당여하지 않겠나"하였다.

선시(禪詩)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 눈 덮인 들길 걸어갈제
不須湖亂行 (불수호란행) - 행여 아무렇게나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

▷ 유적지

서산대사의 유물과 유적이 보관된 해남 대흥사 경내에 있는 표충사(表忠詞)에는
서산대사의 제자 처영과 유정의 진영(眞影)도 안치되어 있다. 표충사는 이조 정
조대왕 12년 건립돼 1976년 9월 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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