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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신동엽의 금강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충남 부여 출생. 본관은 평산(平山). 1948년
전주사범학교, 1953년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
업하였다. 1958년 충청남도 주산농업고등학교
(珠山農業高等學校)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
으며, 시작활동 초기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
을 쓰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활동은 1959년 장시〈이야기하는 쟁
기꾼의 대지(大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에 입선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해 《조선
일보》에 시 〈진달래 산천(山川)〉, 《세계일보》
에 〈새로 열리는 땅〉, 1960년 《현대문학》에
〈풍경(風景)〉, 《조선일보》에 〈그 가을〉 등
을 발표하였으며, 1963년에는 첫 시집 《아사녀
(阿斯女)》를 내었다.

이후 1967년 신구문화사 간행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 《 52인 시집》에 〈껍데기
는 가라〉·〈3월〉·〈원추리〉를 비롯, 7편의 시를 실었다. 같은해에 장편 서사시 〈금강
(錦江)〉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문단적 위치가 일약 부상하였다.

신동엽의 시작경향은 광복 후 구미문학의 영향을 보인 이른바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특
징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1969년 사망. 1975년 『신동엽 전집』 발간. 1980년 유고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발간.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 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금강(錦江)

   1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
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
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여! 훠어이! 

쇠방울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 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
노래라 했다. 

지금, 이름은 달라졌지만
정오(正午)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午砲)가 울리었다.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오우우 …… 하고, 

질앗티
콩이삭 벼이삭 줍다 보면 하늘을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늘진 얼굴로
내 손 꼭 쥐며
밭두덕길 재촉했지. 

(이하 생략)

〈금강〉은 동학란을 소재로 한 ‘이야기시’로서 그의 시세계를 대변해 주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단지 이야기의 전개만을 주안점으로 하지 않
고, 과거를 통하여 현재의 상황을 원근법적(遠近法的)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
징이다. 이 시를 통해 60년대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격동기를 겪으
면서 역사의 허구성을 목격하게 됨으로써 권력의 폭력성을 배격하는 목소리를 지니게
된다. 민중·민족·민주의 정치적 신념을 민족 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가 된다.

▷ 유적지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월룡산(月龍山)기슭에 신동엽의 묘가 있으며, 1970년에 그의
고향 부여읍 동남리 금강변에 시비가 세워졌다. 그의 생가는 부여문화원 뒤에 시인이
태어난 당시 모습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본채와 사랑채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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