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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1 전체: 1428723

 

양팽손의 죽수서원

양팽손(梁彭孫: 1488-1545)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519년 교리로 재직 중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직
되었으나 1537년 복관됨. 글씨를 잘 썼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죽수서원(竹
樹書院)에 배향됨.

그는 문장과 서화로 명성을 얻은 문신이다. 조선 후기의 윤두서(尹斗緖), 말기의
허련(許鍊)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손꼽히는데, 특히 양팽손은 호남
화단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그는 전라도 능성현(현 능주) 월곡리에서 양이하(梁以河)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6년 연상으로 1510년 생원시에 같이 등과한 조광조(趙光祖)는 그와 평생 뜻을 같
이한 지인인데, 그에 대해 ‘더불어 이야기하면 마치 지초(芝草)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서 풍기는 것 같고 기상은 비 개인 뒤의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의 밝은 달과 같아 인욕을 초월한 사람’이라 묘사했다. 조광조의 유배당시 곁에
서 함께 한 이가 학포였고 조광조가 타계하자 학포는 그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는 송흠(宋欽,1459-1547) 문하에서 수학했고, 20세인 1507년 향시에 참여, 29세
인 151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여 공조좌랑, 형조좌랑, 사관
원정원, 이조정랑, 홍문관 교리를 역임했다. 32세인 1519년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
구재상들이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신진사류를 몰아낸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
어 관직이 삭탈된 뒤 낙향했다. 고향에 학포당을 짓고 은거하여 서화에 전념하였다.
50세에 관직이 회복되었고, 타계 1년 전 용담현령에 제수되었다.

그의 문학적인 위상을 살필 수 있는 문집에 《학포유집(學圃遺集)》이 있고, 『조선
왕조실록』에서 그에 관한 언급은 중종(中宗) 12년부터 36년까지 25년 동안 40여
회에 이른다. 한미(寒微)한 집안에서 자라났으나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이 두드러졌
고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는 벗들이 그의 촌스러움을
헐뜯었다고 하나 강직함이 익히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전해지는 작품이 몹시 드물어 그의 화풍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에는 한계가 있으나 국립중앙
박물관에 소장된 〈산수도〉는 전래작이 희귀한
16세기 한국회화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화
풍상 시대성이 선명할 뿐만 아니라, 동시대 조선이
일본에 끼친 영향 등 양국 회화교류의 측면에서도
거론되고 있는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의 그림들은 주지되듯 전래되는 것이
몹시 드물다. 유전작은 10점 내외에 불과하나 장르
상으로는 산수, 영모, 사군자, 기명절지 등에 걸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산수도〉는 화면 우상단
에 학포가 지어 쓴 2수의 제시(題詩)가 적혀있는 것
으로 일찍부터 알려진 그의 대표작인데, 일제시대
데라우치총독이 박물관에 기증한 그림이다. 이 밖
에 '학포선생산수도'라는 제목이 화면상에 있는
〈산수도판각〉이 전해지는데 화면구성 및 산세
표현 나무처리기법 등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산
수도〉와 친연성이 감지되는 작품으로 양팽손의
문집 발간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군자로는 현재 문중이 소장한〈매죽도판각(梅竹
圖板刻)〉이 있고, 원래는 8폭 병풍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4폭만 전해지는〈묵
죽(墨竹)〉이 알려져 있다. 종가집에 소장된 기명절지도에 속한〈연지도(蓮芝圖)〉는
문중 후손이 1916년 서울에 위치한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본가에서 옮겨온 그림이다.

▷ 죽수서원과 학포당

죽수서원(竹樹書院)은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한 곳으로 전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에 있다. 또한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는
양팽손이 사용한 서재인 학포당이 있는데 쌍봉사로 가는 길 왼편에 위치한 쌍봉리란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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