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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왕인박사와 일본

 ▷ 왕인의 생애

1939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영암성기동조」등의 기록에 의하면
왕인박사는 백제 때 4세기 무렵에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
기동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서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서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는 오경
박사에 등용되기도 하였다. 백제 17대 아신왕때에 32세의 왕인은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논어 10권과 천자
문 1권을 가지고 도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가요를 창시하고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일본인들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飛鳥)문화와 나
라(奈良)문화의 원조가 되어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 예술을 꽃피웠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에는 왕인박사 유적지를 정화하여 위패와 영
정을 봉안하고 매년 양력 4월초에 왕인박사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이
유적지는 고증을 거쳐 1987년에 준공식을 거행했다. 유적지 일대(영암군
군서면 성기동)는 기념물 제 20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 곳에는 왕인
박사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집터와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
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또 월출산 중턱
에는 박사가 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책굴과 문산재, 양사재가 있다. 책굴
앞의 왕인박사 석인상은 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오사카 히라카타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대판
부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왕인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많이 알려
진 백제인으로 『일본고사기』, 『일본서기』, 『속일력기』 등에 왕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

 ▷ 유적지

국내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는 지방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된 왕인박
사유적지가 있다. 이곳에는 왕인묘(王仁廟)·내삼문(內三門)·외삼문·문산
재(文山齋)·양사재(養士齋), 전시관, 왕인상, 책굴 등이 있다. 이중 왕인묘
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왕
인이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한 곳으로, 월출산 서쪽 산중턱에 터만 남아있
던 것을 복원하였으며 책굴은 왕인이 학문을 수련할 때 쓰던 석굴이다.  

                             < 문산재 전경>

                        
전시관에는 탄생도·수학도(修學圖)·도일도(渡日圖)·학문전수도 등이걸려
있다. 이외 일찍이 외국문화를 받아들이고 전수하는 대외무역항구로서
왕인이 일본으로 떠날 때 배를 탔던 상대포(上臺浦)가 복원되었다.
왕인이 고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았다는 돌정고개도 남
아 있는데, 이곳은 백제 때 토기촌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산유놀이 때,
왕인이 마셨다는 성천(聖泉)이 있는데 이 물을 마시면 왕인과 같은 훌륭
한 사람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해마다 영암군에서는 왕인축제를
갖는다. 왕인박사 춘향대제, 왕인박사 도일 행렬 재연, 왕인박사 도일 기
원굿, 도포제 줄다리기 등이 행해진다.

일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백제인 왕인박사는 응신천황 15년에
아직기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당시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고 적
혀 있다. 왕인박사는 지금도 일본문화의 은인으로 많은 일본인에게 존경
받고 있다.   

옛날의 나니와(오사카)땅에서 왕인 박사의 권유로 인덕천황이 405년에
등극했다 하여 메이지 정부는 인덕천황 나니와궁 천도 1500년 기념제로
왕인묘 주변을 1905년에 확장했다. 근처 왕인박사 묘역의 또 다른 묘석
'博士王仁墳' 글씨는 일본 황족이 예전에 쓴 것을 음각해 놓은 것이다.
왕인박사묘에서 조금 언덕을 내려오면 1971년 히라카타시가 5억엔을
들여 만든 왕인공원(王仁公園)이 있다. 아래는 백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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