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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6 전체: 1413735

 

 유치환의 깃발

 ▷ 유치환(柳致環: 1908.7.14-1967.2.13)

호 청마(靑馬). 경남 통영 출생.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으로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하여 도요
야마중학에서 4년간 수학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를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만에 중퇴
하였다. 정지용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
작, 1931년 《문예월간》지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단했으며 서정주와 함께 생
명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동인지 《생리》를 간행하
고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간행
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깃발》을 비
롯한 초기의 시 53편이 수록되어 있다.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 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
으로 펴냈다. 그 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부산고, 경남여고 등에
서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시문화상·예술원공로상·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 《사
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67)가 있다.

 ▷ 작품 감상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 시는 1936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청마 초기시의 주된 정조인 연민
과 애수의 서정을 통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허무의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
다. 전 9행의 단연 형식의 이 시는 비유적 비교와 반어적 대조를 통해 성
공을 거두고 있다. 진술에 의존하여 대부분 관념시가 되고 있는 그의 다
른 시에 비해, 이 시는 체험의 윤리적 의미를 중시한 수사적 차원의 방법
을 택함으로써 진술 대신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는 중심 이미지인 '깃발'에 '아우성'·'손수건'·'순정'·'애수'·'마음'이라
는 5개의 참신한 보조 관념이 연결된 확장 은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곧 깃발은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으로 '푸른 해원'이라는 이상향을 동경
하는 '순정'을 상징하며, '애수'와 '마음'은 이상향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좌절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푸른 해원의 하얀 깃발'이라는
색채의 대조 속에는 이 두 상반된 태도가 적절히 대응되어 있다.

다시 말해, 깃발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서 이상향을 향한 '아우성'
의 몸짓으로 의지와 집념의 자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깃대를 떠날
수 없는 숙명적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하고 만다. 결국 이 작품은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해 절망하는 감상적 허무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인 줄
알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깃발의 펄럭
이는 모습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시는 첫 시집 1941년 《삼천리》에 발표되어 <생명의 서>와 더불어  
'생명파'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한 작품이다. 그가 일제 압제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북만주로 탈출하기 1년 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의 치열한 생명 의식과 사회악에 대한 준열한 윤리 의식을 결합하여,
생명파 시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전 6연의 구성이나 내용상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에서는
광명의 지표인 백일(白日)에 대한 확신을 갖는 화자가 망명을 결행하고
있으며, 2∼3연에서는 문명 이전의 건강하고도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희
구와 함께 애련에 빠지는 약하고 속된 감정을 경계하고 있다. 4연에서는
원수와 아첨배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정의를 결의하고 있으며, 5∼6연에
서는 극에 달한 증오심으로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치열한 윤리적
대결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원수'란 생의 모순과 부조리는 물론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모든 요인들을 의미한다.

화자는 민족의 원수인 일제와 그들에게 아첨하는 민족 반역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증오밖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증오는 불의와 부정
한 세력에 대한 것이므로 당연히 '옳은 증오'임을 굳게 믿고 있다. 설령 그
곳에서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결코 원수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으며, 어
느 뜻하지 아니한 때,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은 결코 버릴 수 없기에 어떠한 후회나 한탄도 있을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불의와 악에 대한 타협 없는 증오와
대결의 의지를 관념적 시어와 강건하고 비장한 어조로 나타내고 있다.

 ▷ 유적지

<바위>시비는 부산진역앞 수정가로 공원과 영도남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있
으며 <깃발>시비는 에덴공원에 그리고 <그리움>시비는 용두산 공원에 있
는 '시의 거리'에 있다. 그의 오랜 연고지인 경주에도 시비가 세워졌다.

통영시 정량동 863-1  정량동 언덕에 생가터를 복원하고 그 아래에 청마
문학관을 200년 2월에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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