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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6 전체: 1428444

 

 유희춘의 미암일기

 ▷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유희춘의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인중(仁仲)이며 호는 미암(眉巖).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여류문인 송덕봉(宋德峯)의 남편이며. 최산두
(崔山斗)·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
로 급제하고, 154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다음 수찬·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1547년 양재역(良才驛)의 벽서사건(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
배되고,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사면되어 재등용되었다. 이어 대사성·
부제학·전라도관찰사·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575년(선조 8) 이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어 담양의 의암서원(義巖書院),
무장의 충현사(忠賢祠), 종성의 종산서원(鍾山書院)에 제향되었다.

경사(經史)와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미암일기(眉巖日記)》, 《속몽구
(續蒙求)》, 《역대요록(歷代要錄)》, 《속휘변(續諱辨)》, 《천해록(川
海錄)》, 《헌근록(獻芹錄)》, 《주자어류전해(朱子語類箋解)》, 《시서
석의(詩書釋義)》, 《완심도(玩心圖)》,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
《강목고이(綱目考異)》 등의 저서를 남겼다.  

 ▷ 미암일기(眉巖日記)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소재
보물 제260호로 지정된 유희춘의 친
필일기로 모두 12책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일기는 1567년(선조 즉위년) 10
월 1일에 시작되어 1577년(선조 10)
5월 13일까지 대략 11년간의 기록인
데, 중간에 약간 빠진 부분이 있다.
원래의 것은 조선시대 개인의 일기
중 가장 방대한 것으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자신의 일상생활과 당
시의 조정에서 일어난 사건은 물론, 경외(京外) 각 관서의 기능과 관리
들의 내면적 생활 및 사회·경제·문화·풍속 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으로 1592년(선조 25) 이전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가 모두 불타버리고 없어져 《선조실록(宣祖實錄)》을 편찬할 때 《선
조실록》 첫 10년간의 사료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일기초(日記草)
중 12책에는 부록으로 유희춘과 그 부인 송(宋)씨의 시문과 잡록도 수
록되어 있다.

이 일기는 지금까지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용산리에 있는 미암선생의
사당에 보관해 왔는데, 최근 모현관에 보관하고 있다. 유근영이 소유하
고 있다. 

 ▷ 미암의 시조

미나리 한 펄기를

미나리 한펄기를 케여서 싯우이다
연대 아니아 우리님끠 바자오이다
맛이야 긴지 아니커니와 다시 십어보소서

유희춘이 전라감사가 되어 완산 진안루에 있을 때, 왕명으로 내려온 봉
안사(奉安使) 박순과 함께 놀며 지은 시조이다. 벼슬을 떠난 야인(野人)
의 몸으로 임금을 그리는 애틋한 충성심을 노래한 작품으로 임금을 향한
간절한 충성심을 깊이 살펴 주라는 뜻을 미나리에 이입시켜 표현 한 것
으로 볼 수 있겠다.

 ▷ 미암사당(眉巖祠堂)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는 미암 유희춘의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처음 조선 광해군 때 세워졌으며 2001년 전라남도민속자료
제36호로 지정되었다.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소장하고 있는 석조
건물인 모현관의 뒤쪽 편에 있으며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미암사당과 종가와 모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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