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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4 전체: 1428442

 

 윤흥길의 장마

 ▷ 윤흥길(尹興吉: 1942.12.14-)   

전라북도 정읍 출생. 1973년 원광대학교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대에
숭신여자 중고등학교 교사와 일조각 편집
위원으로 근무하였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77년 <아홉 켤레
의 구두로 남은 사내>로 제4회 한국문학
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3년 <꿈꾸는
자의 나성>으로 제15회 한국창작문학상
을 수상하였다.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3년에
발표한 <장마>를 통해서이다. 이 작품은 좌
우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토착적인 무속
신앙을 통해 극복되는 과정을 어린이의 눈
으로 그리고 있다. 그후 1970년대 후반 들
어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동계급의
소외와 갈등의 문제를 소설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창백한 중년>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을 통해 파행적인 산업화가 초래한 사회적 모순을 비판적 시선
으로 바라보며, 주인공이 소시민 의식에서 탈피하여 노동현장에 투신하
고 좌절하면서 새로운 자기각성을 이루는 과정을 그려 현대사회의 정신
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완장>과 같은 장편소설을 통해 권력의 생태에
대한 비판의식을 풍자와 해학의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장편 <에미>는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여인의 수난사를 따뜻한 시선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남편의 폭력과 전쟁의 폭력을 샤머니즘화된 미륵신앙으로 이겨
내고 감싸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절도있는 문체로 왜곡된 역사현실과 삶의 부조리 그리고 그
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특
한 리얼리즘의 기법에 의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었으며, 산업화와 소외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도 보여주었다.

소설집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묵시의 바다》
《환상의 날개》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순은의 넋》 《장마》 《내
일의 경이》 《에미》 《완장》 《백치의 달》 《꿈꾸는 자의 나성》 《돛
대도 아니 달고》 《말로만 중산층》 《빙청과 심홍》 등을 발간하였다.

 ▷ 장마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바,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
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이후부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친
할머니라 이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한다. 그것은 곧 빨치산에 나가 있는 자
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저주와 같았기 때문이다.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서 가족들은 대부분 할머니의 아들, 곧 삼촌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할머니는 점쟁이의 예언을 근거로 아들의 생환을 굳게 믿고 아들
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예언한 날이 되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 있는 할머니, 그때 난데없이 구렁이 한 마리가 애들의 돌팔매
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 온다. 할머니는 별안간 졸도한다. 집안은 온통 쑥
대밭이 되는데, 외할머니는 아이들과 외부인들을 쫓아 버리고 감나무에 올
라앉은 구렁이에게 다가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루런 반응이 없자 할머니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을 불에 그을린다. 그 냄새에 구렁이는 땅에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져 간다. 그 후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화해하게 되고 일 주일
후 숨을 거둔다. 장마가 거친다.

윤흥길의 문학적 출발점은「장마」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장마」는
「황혼의 집」과 함께 윤 흥길 문학의 본령이며 핵심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두 작품의 발표로 작가 자신이 문단의 주목을 받
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이미 윤 흥길의 역사에 대한 의식과 묘사로서의 소
설적 가능성을 내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장마」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저 끈끈하고 무덥고 고통스런 한 시기의 이야기를 토속적인 믿음과
전통적인 모성애와 상처받은 성장기를 통해서 전해준다는 점에서 윤 흥길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중편소설 가운데서 손꼽을 만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장마」는 6.25 동란 중에 일어난 한 집안의 일을 소재로 한 것이다. 서술자
로 등장하는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의 어린 소년이고, 소설 속의 주인공은 친
할머니와 외할머니이다. 그러나 서술자인 '나'는 사용 어휘라든지 사태 판단
의 내용상 어린 아이가 아니다. 서술자가 성장한 뒤에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서 기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서술되고 있는 내용은 이중의 시각
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이중의 시각이 이 소설의 치열한 비극성을 객관
화시키면서 감미로운 서정성까지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탁월한 상징적 장치는 '구렁이'이다. '저주받은 사람이 죽
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우리 나라 전래의 무속 신앙은 이 작품의 경우에는
단순한 미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빨치산이 되어 죽은 아들의 어머니인
친할머니나, 국군으로 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외할머니의 경
우 우연히 나타난 그 구렁이는 결코 우연의 등장이 아닌 필연의 결과이며 미
신이 아닌 확신이요, 확증이다. 그것은 혼란한 역사의 돌팔매에 쫓기는 불행
한 영혼이며 우리 역사가 치러야 했던 음산하고 저주스러운 동족 상잔의 비
극을 극명하게 포상하는 구체적 실체이다. 따라서, 가련한 두 노파의 한 맺힌
설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구렁이는 비극의 실체로서
리얼리티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할머니의 머리카락 타는 냄새
를 맡고서야 그 비극의 실체 - 구렁이가 사라졌다는 결말 처리는 인간의 숨
결이 있어야 역사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다는 작가 정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 작가의 말

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 창작 활동을 하면서 자주 부닥뜨리는 질문 중 하
나다.  그때마다 나는 제법 그럴싸한 명분을 달아 내가 왜 문학을 하는지를
밝히곤 한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것은 질문에 대비하여 뒤늦게 정리해서 마련
한 답변일 뿐, 실은 맨 처음의 그 생각, 내 존재 증명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찾고 싶다는 그 욕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우선, 나는 고백하기 위해서 문학을 한다.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해 고백성사
하는 종교적 고백만이 고백은 아니다. 문학적 고백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
고 복잡해서 죄와 허물뿐만 아니라 열등감, 상처와 장애, 가난, 슬픔과 외로
움, 수치심, 통증 등등에 대한 표현 모두를 포괄한다.

나는 낯선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거나 학년 초에 새내기 학생들을 맞는 첫
시간이면 내 어눌한 말주변과 신체적 결함 때문에 혹시라도 실수하고 망신당
할까봐 무척 긴장하고 위축된다. 그래서 내 구강 안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
을, 사실은 내가 전면의치를 끼고 있다는 점을 대뜸 고백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곤 한다.

문학의 제단 위에 아까운 이빨을 몽땅 제물로 바친 나의 말실수를 비웃는 자
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청중들 사이에 웃음이 터진다.
비로소 나는 내 신체적 결함에서 비롯된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진다.
빌어먹을 틀니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을 받아 나는 그 틀니를 다스리는 주인이
된다. 약점을 일찌감치 솔직하게 고백해버린 나를 사람들은 우호적으로 너그
럽게 대한다.

전투 중에 총상을 입은 병사가 목청껏 군가를 부른다. 낙반 사고로 막장 안에
갇힌 광부가 신심을 다해 찬송가를 부른다. 고초 당초보다 매운 된시집살이에
시달리는 며느리가 밭일을 하면서 시어미의 흉을 담아 농요나 부요(婦謠)를
읊조린다.

일꾼들이 깊은 우물을 파면서 흥겨운 노랫가락에 동작을 맞추어 힘든 노동을
견딘다. 이 모두가 고백인 셈이다. 노래 형식에 의탁해서 자신의 아프고 두렵
고 서럽고 고단한 처지를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억압기제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고백의 일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지극한 상실감과 절망은 곧잘 통곡으로 표현된
다. 울음의 형식을 빌려 감정을 고백함으로써 슬픔의 근저에서 멀리 벗어나려
는 몸부림이다. 차마 못 당할 억울한 꼴을 당한 사람이 남몰래 일기를 쓴다.
원한과 분노를 글로 고백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보복보다는 자기 자신을 비
참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안간힘이다.

문학이란 원원이 자기 구원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가 작품을 빙
자해서 세상을 향해 고백하고 호소할 때 일차적으로 작가 자신이 해방되고 구
원받는다. 만일 그 고백과 호소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독자들이 생긴다면 작가
개인의 구원은 이차적으로 다수의 타인의 구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데뷔작이자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은 이를
테면 나 자신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고백문과도 같은 소설이다. 그만큼 사소설
적인 요소가 대폭 수용된 작품이다. 군복무 중 갑작스레 부친상을 당한 사병이
곤궁한 형편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가족들을 도울 길이 없어 병영 안에서 탈
영을 꿈꾸는 암담한 이야기다. 그 사병은 바로 나 자신이나 다름없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지독한 절망과 분노는 나 혼자서만 속에다 담아두고 있으면 큰 고
질병이 될 것 같았다.

누군가를 붙잡고 내 속을 죄다 털어놓지 않으면 제 명대로 못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쩌다 문학이란 수단을 붙잡게 되었을 때 얼씨구나 하고 맨 먼저 고백
한 것이 바로 군대 시절의 내 신산스런 체험이었다.

다음, 나는 가출을 위해 문학을 한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가출을 도모하기 위
해 문학을 시작했고, 또한 문학이란 수단을 통해 여태껏 수많은 가출을 경험해
왔다.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은 나에게 늘 불평 불만과 실망만을 안겨주곤 했다.
가정도, 학교도, 고향 동네도 그랬다. 어릴 적부터 다닌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도 내게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되지 못했다. 내가 꿈꾸는 이상 세계는
아직까지 내가 밟지 못한 미지의 땅, 걷지 못한 어느 길, 하지 못한 어떤 일 쪽
에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예감 때문에 나는 늘 초조하고 뭔가에 늘 갈급했다.

밑빠진 독과도 같은 내 영혼의 빈그릇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직 가출만이 내게
허용된 유일한 수단이라고 나는 오래 전부터 믿고 있었다. 내 가출의 역사는 초
등학교 시절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어렵게 장만해서 정을 붙이고
살았던 우리 집이 무허가 판잣집이란 이유로 시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를 당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충격으로 말미암아 내 소년 시절의 행
복은 순식간에 박살나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턱없이 조숙해져서 우리 집을 무참히 허물어뜨린 세상과 심각하
게 불화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향한 복수를 꿈꾸
며 최초의 가출길에 오른 이래 해마다 가출 버릇을 되풀이하다가 중학교 2학년
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마음을 잡아 불화의 대상들과 그럭저럭 화해하고 가출벽
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하략)-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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