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처음으로

  나의문학기행   서예감상   Site Map   제작자   E-Mail

Untitled

  ■ 고대의 남도문학

  ■ 고려의 남도문학

  ■ 조선의 남도문학[1]

  ■ 조선의 남도문학[2]

  ■ 조선의 남도문학[3]

  ■ 조선의 남도문학[4]

  ■ 조선의 남도문학[5]

  ■ 현대의 남도문학[1]

  ■ 현대의 남도문학[2]

  ■ 현대의 남도문학[3]

  ■ 현대의 남도문학[4]

  ■ 현대의 남도문학[5]

  ■ 남도 민속기행

  ■ 남도 역사기행

  ■ 남도 정자기행

  ■ 남도 사찰기행

  ■ 남도 맛기행

  ■ 남도 섬기행

  ■ 남도 산기행

  ■ 남도 강기행

  ■ 남도 공원기행

  ■ 5·18과 문학

  ■ 학습자료실

  ■ 아름다운 한글

  ■ 이달의 세시풍속

  ■ 봉사활동

  유머게시판

  자유게시판

  ■ 글 남기기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이서의 낙지가

이서(李緖: 1482-?)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숙(繼叔). 한양출신.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증손자이며,
이산수(伊山守) 사성(嗣盛)의 셋째아들이다.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23세 때 어머
니마저 여의었다. 26세 되던 해 형 하원수(河源守) 찬(纘)이 이과(李顆)와 함께 견
군 돈(甄城君惇)을 추대, 모반하려 한다고 노영손(盧永孫)이 밀고, 기옥(起獄)되어
맏형 진성수(珍城守) 면(綿)은 경상도 초계(草溪)로, 그는 전라도 명양현(鳴陽縣)으
로 정배되었다.

39세 때 정배된 지 14년 만에 귀양에서 풀렸으나 귀경을 단념하고 담양 대곡(大谷)
에 은거하여 의리학(義理學)의 서적에 침잠하는 한편, 자손과 후진의 교육에 전념
하였다.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 樂志論》을 탐독하며 안빈낙도의 생활을 누리
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뒤에 추성수(秋城守)에 봉하여졌다.

어려서부터 풍채가 당당하였으며 시재·필력 또한 뛰어나 그의 〈몽한시(夢漢詩)〉
를 ‘옥루수조지사(玉樓水調之詞)’로, 그의 필치를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의
필격에 견주기도 하였다.

귀양에서 풀린 뒤 한양으로 돌아갔으면 영화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나 이를 거부하
고 담양에 머물러 은거생활을 한 것은 속된 입신양명이나 부귀영달에 초연한 그의
고고한 인품을 말해주고 있다. 유작으로 〈몽한시〉 1수와 〈낙지가(樂志歌)〉 1편
이 《몽한영고 夢漢零稿》에 실려 있다.

낙지가(樂志歌)

작자가 1523년을 전후하여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에 전라도 담양(潭陽)에 은거하면
서 지은 노래이다. 형식은 모두 4·4조이며,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52구이다.
줄글체 기사형식(記寫形式)에 순한문투의 표기이다. 내용은 태평성대를 축원하면
서 담양의 경치와 미풍양속을 찬양하며, 거기에서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樂志
論>을 벗삼아 선현의 도를 본받고 안빈낙도하며 살겠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담양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이서(李緖)의 낙지가(樂志歌)는 서사ㆍ본사ㆍ결사의
3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전체 내용은 중국의 처사 중장통의 삶을 흠모하여 권력
등 세속의 영화와는 멀리한 채 자연과 함께 하는 안빈낙도의 처사적 삶을 노래한
가사이다

한문투가 많고 문학 작품으로는 다소 거칠고 난삽한 표현이 있지만 이 작품이 담양
권의 최초 가사라는 점에서 다른 어느 시가보다 국문학적 위상이 크다고 하겠다.
또한 작자가 한때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죄인으로 살던 중 터득한 자연귀의의
사상과 삶을 잘 함축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송순이 이름난 <면앙정가>를
창작한 동기의 하나로 이서의 <낙지가>로부터 받은 영향을 들 수 있다.

全羅道라 智異山은 萬八千年 靑靑하고
湖南千里 名區되어 五十三州 각고을의
星列 布 벌렸는데 秋月山이 潭州로다.

▷유적지

몽한각(夢漢閣)은 이서의 재실로 지금은 담양군 대덕면 매산리 32-1에 있다.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