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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3 전체: 1428725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시

 ▷ 이순신(李舜臣 1554-1611)

조선 시대의 명장. 자 여해(汝諧). 시호
충무(忠武). 서울 출생. 1576년(선조 9)
식년무과(式年武科)에 병과로 급제, 권지
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처음 관
직에 나갔으며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
관(董仇非堡權管)에 보직, 이듬해 발포 수
군만호(鉢浦水軍萬戶)를 거쳐 1583년(선조
16) 건원보권관(乾原堡權管)·훈련원 참군
(訓鍊院參軍)을 지내고 1586년 사복시주부
(司僕寺主簿)를 거쳐 조산보 만호(造山堡
萬戶) 때는 호인(胡人)의 침입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정죄(定罪)하려 하자 그 원인이 첨
병(添兵)을 거절한 데 있다 하여 자기의 정
당성을 끝내 주장하다 중형은 면했으나 백
의종군(白衣從軍)의 길에 올랐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에게 발탁
되어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이 되고,
1589년(선조 22) 선전관 ·정읍 현감(井邑
縣監) 등 미관말직(微官末職)만을 지내다
가 1591년(선조 24) 유성룡(柳成龍)의 천
거로 절충장군(折衝將軍) ·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같은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全羅
左道水軍節度使)에 승진, 좌수영(左水營:
麗水)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玉浦)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파하고
이어 사천(泗川)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 적선 13척을 분쇄한 것을 비
롯하여 당포(唐浦)에서 20척, 당항포(唐項浦)에서 100여 척을 각각 격
파하여,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품(陞品)되고 7월 한산도(閑山島)에서
적선 70척을 무찔러 한산대첩(閑山大捷)의 큰 무공을 세웠다.

이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오르고 다시 가토 요시아키[加 嘉明]의 수
군을 안골포(安骨浦:창원군 웅천면)에서 격파하고 9월 적군의 근거지
부산에 쳐들어가 100여 척을 부수었다.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熊川)의 적 수군을 격파, 남해안 일
대의 적 수군을 완전히 일소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겨 본영(本營)으로
삼고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 수군이 내원(來援)하자 죽도(竹島)에 진을 옮기고, 장
문포(長門浦)에서 왜군을 격파, 적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막아 왜군의 작전에 큰 타격을 가하였고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확충 ·난민구제 ·산업장려 등에
힘썼다.

1597년 원균(元均)의 모함으로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우의정 정탁(鄭琢)의 변호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두 번째 백
의종군을 하였다.

이에 앞서 명 ·일 간의 강화회담이 깨어지자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
유재란(丁酉再亂) 때 원균이 참패하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
임명되어,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鳴梁)에서 133
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었다.

다음해 고금도(古今島)로 진을 옮겨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이 노량(露
梁)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陳璘)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
을 기습하여 혼전중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왜란중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나라를 지켜 한국 역사상 가
장 추앙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
(亂中日記)》와 시조 ·한시 등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이 되고 덕풍부원군(德豊府院君)이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이 추증, 13년(광해군 5) 영의정이 더해졌다.  
저서에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있다. 

                                 <난중일기>

 ▷ 충무공의 애국시

    한산섬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歌)는
    남의 애를 끓나니.

   진중음(陣中吟) 1

    님의 수레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왕자들 북쪽에서 위태한 몸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
    장수들은 공로를 세울 때로다.
    바다에 맹세하니 용이 느끼고
    산에 맹세함에 초목이 아네.
    이 원수 모조리 무찌른다면
    내 한 몸 이제 죽다 사양하리오.

  진중음(陣中吟) 2

    삼백년 누려 온 우리 나라가
    하루 저녁 급해질 줄 어찌 아리오.
    배에 올라 돛대 치며 맹세하던 날
    칼 뽑아 천산 위에 우뚝 섰네.
    놈들의 운명이 어찌 오래랴
    적군의 정세도 짐작하거니
    슬프다 시 귀절을 읊어 보는 것
    글을 즐겨 하는 것은 아닌 거라네.

  진중음(陣中吟) 3

    한 바다에 가을 바람 서늘한 밤
    하염없이 홀로 앉아 생각하노니
    어느 께나 이 나라 평안하리오.
    지금은 큰 난리를 겪고 있다네.
    공적은 사람마다 낮춰 보련만
    이름은 부질없이 세상이 아네.
    변방의 근심을 평정한 뒤엔
    도연명 귀거래사 나도 읊으리.  

  무제(無題) 1

    병서도 못 읽고서 반생을 지났기로
    위대한 때 연마는 충성 바칠 길이 없네.
    지난 날엔 큰 갓 쓰고 글 읽기 글씨 쓰기
    오늘은 큰 칼 들고 싸움터로 달리노니,
    마음엔 저녁 연기 눈물이 어리우고
    진중엔 새벽 호각 마음이 상하누나.
    개선가 부르는 날 산으로 가기 바쁘려든
    어찌타 연연산(燕然山)에 이름을 새기오리.

  무제(無題) 2

    아득하다 북쪽 소식 들을 길 없네.
    외론 신하 때 못한 것 한이로구나.
    소매 속엔 적을 꺾을 병법 있건만 
    가슴 속엔 백성 건질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한데 서리 엉키고
    산과 바다 비린 피가 티끌 적시네.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 보낸 뒤
    복근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제사망군졸문(祭死亡軍卒文)

    윗 사람을 따르고 상관을 섬겨
    너희들은 직책을 다 하였건만
    부하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
    나는 그런 덕이 모자랐도다.
    그대 혼들을 한 자리에 부르노니
    여기에 차린 제물 받으오시라

 ▷ 유적지

묘는 충청남도 아산(牙山)에 있고 통영의 충렬사(忠烈祠), 여수의 충민사
(忠愍祠), 아산의 현충사(顯忠祠) 등에 배향되었다. 이 중 현충사는 성역
화되어 전시관 등을 건립, 그의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해남의 울돌목
(鳴梁)에는 명량대첩비와 기념관이 있다

          <통영 한산섬과 해남 울돌목의 진도대교, 명량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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