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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노산 이은상과 무등산

 ▷ 이은상(李殷相: 1903-1982) 

호는 노산(鷺山). 시조 시인. 사학자. 경남 마산
출생. 1922년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1923년 연희전문학교
중퇴,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
과를 청강하였다. 귀국한 뒤로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뒤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근무
했다.

1920년대 '국민문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
30년대 중반기부터 <양장시조(兩章時調)>를 시도
하여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며,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 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8.15해방
과 함께 풀려났다. 같은 해 호남신문사 사장을 지냈고, 1950년 이후 청
구대학(지금의 영남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 대한
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9년부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
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등을 맡아보았다. 1967년 시조작가협회장,
한글학회 이사를 지냈고, 1969년 독립 운동사 편찬위원장, 1972년 숙명
여자대학교 재단 이사장이 되었다.

시조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충무공 이순신 연구로 사학계에도 널리
알려진 그는 생전에 『노산시조집』과 『노산문학선』 등 1백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리움> <성불사의 밤> <동무생각(思友)> <그 집 앞> <가고파> <금강
에 살으리랏다> 등의 시조가 가곡으로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기도 하다.

전남 특산차 

무등산 작설차를
곱돌솥에 달여내어
草衣의 茶法대로
한 잔 들어 맛을 보고
다시 한 잔 맛을 보고
茶道를 듣노라니
밤 깊은 줄 몰랐구나 

사랑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디마오
타고 다시 타서
재될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 곳이 없소이다.
반타고 꺼질진댄
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타고
생나무로 있으시오
탈진댄 재 그것 초차
마저 탐이 옳소이다
 

가고파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눌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느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를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믈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안기자 가 안겨.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장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려워. 

 ▷ 노산과 무등산

노산은 해방 후에 호남신문사 사장을 하며 광주와 인연을 맺었다. 가끔 무등
산을 올라 무등산 차밭에서 나오는 설록차를 마시며 무등산이 불교적 영장
(靈場)이 된 뒤에 불교적인 가치를 설명한 이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3년 2월에 전남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

                           <증심사 뒤에 있는 무등산 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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