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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이청준의 서편제

  이청준(李淸俊, 1939.8.9~2008.7.31)

소설가. 1939년 8월 9일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에서
태어났다(현 회진면 진목리). 광주서중과 광주제일고등학교
를 거쳐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한때 《사상계(思
想界)》를 비롯한 문학잡지사에서 근무했다. 1965년 《사상
계》 신인작품 모집에 단편소설 <퇴원(退院)>이 당선되어 문
단에 진출했고 주요 작품으로는 <병신과 머저리>(1966), <굴
레>(1966), <석화촌>(1968), <매잡이>(1968), <소문의 벽>(1
971), <조율사>(1972), <들어보면 아시겠지만>(1972), <떠도
는 말들>(1973), <이어도>(1974), <낮은 목소리로>(1974),
<자서전들 쓰십시다>(1976), <서편제>(1976), <불을 머금은
항아리>(1977), <잔인한 도시>(1978), <살아있는 늪>(1979), <
돌아오지 않는 탕자>(1981), <다시 태어나는 말들>(1981),
<가위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1984), <해변아리랑>(1985), <숨은 손가락>(1985),
<흐르는 산>(1987), <전짓불 앞의 방백>(1988)등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가리어진 진실을 탐색하는 경향이 있다.

소설집으로  <별을 보여 드립니다>(1971)를 필두로 <소문의 벽>(1972), <가면의 꿈>
(1975), <병신과 머저리>(1975), <당신들의 천국>(1976), <이어도>(1976), <예언자>
(1977), <자서전들 쓰십시다>(1977), <잔인한 도시>(1978), <남도 사람>(1978), <춤
추는 사제>(1979), <흐르지 않는 강>(1979), <매잡이>(1980),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1981),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 <병신과 머저리>(1984), <조율사>(1984), <따
뜻한 강>(1986), <아리아리 강강>(1988), <자유의 문>(1989)등이 있다.  수필집으로
〈작가의 작은 손〉(1978)이 있고 1982년에는 희곡 <제3의 신>을 발표하였다. 1967년
동인문학상, 196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5년 창작문학상, 1978년 이상문학상,
1979년 중앙문예인상, 1986년 대한민국 문학상, 1990년 이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또한 1972년에는 단편 〈석화촌 石花村〉이 영화화되어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서편제>는 1993년 영화로 제작되어 제3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금관문화훈장 추서

 서  편  제 

  [줄거리]

전라도 보성땅 소릿재 주막의 주인은 남도소리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소리꾼 여인이다.
어느 날 이 주막에 북장단을 치는 사내가 소릿재 여인 이야기를 듣고 손님으로 찾아든
다. 손님의 재촉에 의해 소리를 뽑아대는 그 여인은, 춘향가, 수궁가 등을 열창하면서
소리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기보다 앞서 소리를 하다가 죽은 소리꾼 아비의
사연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놓는다.

어느 해 가을, 소리를 하는 쉰 살이 넘은 아비와 열다섯 정도의 어린 딸아이가 이곳에
이주하여 소리를 하며 살았는데, 소리꾼 아비는 병들어 죽는다. 그 소리꾼 아비의 소리
는 어린 딸에게 전승되었는데, 그 딸의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소리꾼 아비의 소리
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주막집 여인은 그 딸한테서 다시 소리를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야기의 진행은 애당초 소릿재 주막으로 돌아간다. 그 주막에 들른 손님이 소리
꾼 아비의 의붓아들이고, 어린 딸 역시 의붓동생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친어미를 소리
꾼 아비가 죽였다고 오인하는 데서 그 의붓아들의 증오감이 싹튼다. 사실 친어미는 딸
을 낳다가 심한 복통 끝에 죽은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그는 어미의 원수를 갚기 위
해 의붓아비와 그 소리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를 갖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뜨겁게 이글
거리는 햇덩어리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살의는 현실적으로 무력하게 되어,
그 자신은 끝내 의붓아비한테서 떠나고 만다. 그가 떠난 후, 의붓아비는 딸의 눈을 멀게
한다. 그런데 딸의 눈을 멀 게 한 것은 좋은 소리를 가꾸기 위해 가슴에 말 못할 한을
심어 줘야 했을 거라는 보다 큰 가능성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 중 돌담길- 완도군 청산면 당리>

<서편제>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가슴 아픈 한과 여기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그린 작품이다. 일정한 직업없이 떠돌이 하는 소리꾼과 그의 딸의 이야
기에서 소리에만 미쳐 살아가는 소리꾼이 그 딸 또한 소리장이로 만들기 위해 딸이 잠
자는 사이 두 눈에 청강수를 넣어 두 눈을 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으로 옮겨가 소리가 비상해진다는 것이다. 즉 좋은 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소리꾼 아비의 죽음과 그 딸의 실명이 비극의 정점을
이루는데, 실명의 원인에서 야기되는 두 가지 대비적 관계는 '원한'과 '한'으로 나타난
다. 그런데 그 딸이 아비를 용서함으로써 원한은 한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한(恨)에 대
한 의식은 소리와 어우러져 작품 <서편제>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해내며, 주제에 직결
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서편제>는 작가 이청준이 즐겨 다룬 전통적 장인(匠人)의 토속적 애정에 관심을 가진
소설이다. 장인들이란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가부장적 질
서에 의해 움직이는 규범 사회의 산물이었다. 이를 테면 <매잡이>에서 '매잡이', <줄>에
서의 '줄광대', 그리고 <서편제>에서 '판소리 속에 사는 소리꾼'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이청준은 문명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우리 것에 대한 애정어린 향수
와 수호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다양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서편제>는 1993년 영화로 제작되어 제31
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
상, 한국 영화사상 관람객 100만이 넘는 미
증유의 흥행 기록을 세움으로써 '서편제'와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한층 고조시키는 계기
가 되기도 했다. 서울 지역 개봉관에서만 1백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한국영화 관객동
원최고기록을 세웠다. 제31회 대종상영화제
에서 작품상·감독상·촬영상·남우주연상 등 6개
부분을 수상했으며, 1993년 제1회 상하이[上
海]영화제에서 감독상·여우주연상을 수상하
였다.  

 ▷ '소문의 벽' 줄거리

잡지사 편집장인 '나'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누구에게이가 쫓기고 있다며 도와
달라는 한 사내를 만난다. 엉겁결에 그를 하숙방으로 데려와 함께 잠이 들었던 '나'는 아
침에 깨어나서 사내가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한다.

이상한 생각이 든 '나'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정신 병원을 찾아갔다가 그 사내가 병원에
서 도망친 환자 '박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다. 담당의사인 김 박사는 '박준'이
심한 히스테리의 일종인 진술 공포증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환자는 무엇인가로부터 끊
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일체의 진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박준'의 본명은 '박준일'로서 1-2년 전만 해도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소설가이다.
'나'는 '박준'이 쓴 '괴상한 버릇', '벌거벗은 사장님' 그리고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중편
소설 등을 읽게 된다.

그 소설 중에 '박준'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전짓불의 실체가 드러난다. 남해안의 조그만 포
구(浦口)가 고향인 '박준'은 6·25가 일어났던 해 가을, 밤중에 밀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
고 좌인이냐, 우익이냐를 묻는 정체 모를 사내들에게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나'는 김 박사에게 찾아가서 '박준'의 병인(病因)을 이야기하지만, 김
박사는 자신의 권위 의식 때문에 '박준'의 진술을 끌어내기 위한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끝내 김 박사는 '박준'의 병실 불을 끄고전짓불을 들이대는 치료 방법을 택하고
만다. 그날 밤 '박준'은 병실을 도망쳐 나가 버린다.

'나'는 '박준'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를 회의하면서 길을 걷다가 김 박사나 내가 박
준의 병세를 더 악화시켰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한다.

 

 눈길

“내일 아침 올라가야겠어요.”
점심상을 물러나 앉으면서 나는 마침내 입 속에서 별러 오던 소리를 내뱉어 버렸다.
노인과 아내가 동시에 밥숟가락을 멈추며 나의 얼굴을 멀거니 건너다본다.
“내일 아침 올라가다니. 이참에도 또 그렇게 쉽게?”
노인은 결국 숟가락을 상위로 내려놓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묻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내친걸음이었다. 어차피 일이 그렇게 될 바엔 말이 나온 김에 매듭을 분명히
지어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 내일 아침에 올라가겠어요. 방학을 얻어 온 학생 팔자도 아닌데, 남들 일할 때 저라
고 이렇게 한가할 수가 있나요. 급하게 맡아 놓은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요.”
“그래도 한 며칠 쉬어 가지 않고… 난 해필 이런 더운 때를 골라 왔길래 이참에는 며칠
좀 쉬어 갈 줄 알았더니….”
“제가 무슨 더운 때 추운 때를 가려 살 여유나 있습니까.”
“그래도 그 먼 길을 이렇게 단걸음에 되돌아가기야 하겄냐. 넌 항상 한동자로만 왔다가
선걸음에 새벽길을 나서곤 하더라마는… 이번에는 너 혼자도 아니고… 하룻밤이나 차분
히 좀 쉬어 가도록 하거라.”
“오늘 하루는 쉬었지 않아요. 하루를 쉬어도 제 일은 사흘을 버리는 걸요. 찻길이 훨씬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기선 아직도 서울이 천리 길이라 오는 데 하루 가는 데 하루….”
“급한 일은 우선 좀 마무리를 지어 놓고 오지 않구선….”
노인 대신 이번에는 아내 쪽에서 나를 원망스럽게 건너다보았다.
그건 물론 나의 주변머리를 탓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게 그처럼 급한 일이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략>

 ▷ 작가의 말('남도사람' 후기)

우리의 삶에 대한 문학적 인식의 실체는 그 삶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언어의 질서이며
그 기능이다.따라서 우리의 삶과 안팎의 갈등은 바로 이 언어질서의 안팎의 문제로 이
해할 수 있을 것이다.자기 고유의 삶 꼬는 그 방식에 대한 인식 기능으로서의 존재적
언어질서, 혹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균형있게 조절하고 확대해나가는 사유주체로서의
자율적 언어직서와, 인간상호간의 삶을 연결하고 약속과 정보의 수단으로서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는 관계기능의 공리적 언어질서가 그 양변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소설 속의 삶은 이 존재적 언어와 공리적 언어 혹은 관계적 언어 양자
의 질서 위에 의지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이란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대해 말로 꾸어지는 일종의 꿈이랄수도 있으리라. 그래
나는 때로 그 존재적 언어와 관계적 언어 질서를 조화롭게 통합하는 총체적 언어(삶)질
서의 꿈을 꾸어 보곤 한다.

그것은 나무와 새에 관한 꿈이다. 나무의 삶은 대체로 자적적이다. 그것은 혼자서 수분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취하여 줄기를 키우고 잎을 펼치며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결코 이웃
을 얻어 함께하기 위하여 스스로 새를 부르지 않는다. 나무들은 그저 자기 생명의 실현과
정으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나무가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 고
유의 생명의 실현과정일 뿐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이웃의 삶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기도 한 것이다. 나무의 잎들이 무성해지면 새들은 스스로 나무를 찾는다. 그리고 그 무성
한 잎들 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깃들여 온다. 새들은 그 무성한 나무에서 나무 자신의 생명
력의 실현뿐 아니라 거기 깃들인 사랑의 꿈을 보게 되는 때문이다. 하여 나무가 크고 잎이
무성할수록 나무의 사랑은 그만큼 클 것이고, 새들도 그만큼 많이 찾아와 노랫소리가 더
욱 화창해질 것이다.

나는 새들을 찾아 들판을 헤매 다니는 나무를 생각할 수는 없다. 그대신 나는 높고 울창한
나뭇가지 속에 갖가지 새들이 날아들어 그 낭자한 노랫소리로 하여 나무와 새가 하나의
삶으로 어우러져 합창을 하는 그런 사랑의 나무를 꿈꾼다. 그것이 내가 나의 소설로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힘찬 생명과 삶의 나무, 혹은 자유와 사랑의 빛의 나무인 것이다.
새가 깃들지 않는 나무를 생각할 수 없듯이 깃들 나무가 없는 새도 또한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나무가 곧 그 새의 자유와 사랑과 새로운 비상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묶인 <남도 사람>연작은 이를테면 그런 나무의 삶(그쪽을 우선해서 본)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그 새와 나무와의 관계에 대한 나의 행복스런 꿈이, 그리고 그 나무
쪽 삶에 대한 무력하나마 허심탄회한 꿈이야말로 저간의 언어질서를 기초로 한 우리의
생명과 삶의 자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문학적 확인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 까닭이다.

 ▷ 작가의 고향

작가의 고향은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이다.
회진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데 마을 앞으로는 완도의 섬들이 펼쳐져 보인다.
지금은 남이 살고 있으며 진목리는 소설가 한승원의 처가마을이기도 하다.
또한 마을 앞에는 장흥군에서 세운 '장흥의 문학인'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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