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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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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의 창계서원

임영(林泳: 1649-1696)

조선 후기 문신·학자.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본관은 나주(羅州). 나주시
다시면 회진에서 일유(一儒)의 아들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년) 봄에 아버지의
명으로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에 들었다.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1671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독서당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吏曹正郎)·검상(檢祥) 등을 거쳐 94년(숙종20) 대사간·개성부유수(開
城府留守) 등을 지냈고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그 뒤에는 대사헌·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뜻이 크고 박식하였으며,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기호학파(畿湖學
派)의 중진학자로서 성리학에 밝았는데,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절충적인 입장
을 취하였다. 이이의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는 받아들였으나 기발이승설(氣發理
乘說)에는 반대했다. 그의 절충론적 입장은 조선 후기 성리학사상 절충파를 형성하
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咸平)의 수산사(水山祠)
에 제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창계집》이 있다.  

창계집(滄溪集)

임영(林泳)의 시문집. 1708년(숙종34) 동생 임정(林淨)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책 끝에 임정의 발문이 있다. 총 27권 1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 권2는 시·
사(辭), 권3은 소차(疏箚), 권4·5는 소(疏), 권6-15는 서(書), 권16은 교서·전(箋)·제문·
기(記)·서(序)·발(跋)·잡저·상량문, 권17은 묘문·행장, 권18은 경연록(經筵錄), 권19-4
는 독서차록(讀書箚錄), 권25·26은 일록(日錄), 권27은 부록으로 치제문·제문·만(挽)
등으로 되어 있다.  목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창계서원

나주시 가운리 광목간 도로 가에 창계서원이 있다. 원내에는 강화유수를 지낸 임영
의 아우 임정(林淨:1654-1710)의 영정을 모신 매계영당(梅溪影堂)과 영성각, 임영
신도비 등이 있다. 그의 묘는 영암군 금정면 학송마을 옆 산자락에 있다.

           <아래 사진은 창계서원과 창계신도비, 매계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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