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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임형수와 정미사화

 임형수(林亨秀: 1514-1547)  

자는 사수(士遂), 호는 금호(錦湖). 본관은 평택(平澤). 북병사(北兵使) 준(畯)의
아들로 나주에서 태어났다. 1531년(중종 26년) 18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1535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그 뒤 주서(注書) 기사관(記史官) 등을 지낸후 인종(仁宗l)이 동궁으로 있을 때
시강원설서(侍講院設書)로 뽑혔다가 다시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을 지낸후 호
당(湖堂: 조선조 때 젊고 재주있는 文官이 임금의 특명으로 공부하는 곳)에서 이
퇴계 등과 같이 학문을 닦았다.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승진하여 명나라 사신의 원접사(遠接使)인 양곡
소세양(蘇世讓)의 종사관으로 일했고 그후 회령판관(會寧判官)에 임명되었다.
그때까지 변방은 무관출신이 다스려 왔기에 사간원(司諫院)에서는 이를 만류하
려고 왕에게 주청(奏請)을 했으나 중종임금은 “이 사람은 문무(文武)의 재주가
겸전하여 장차 크게 쓸 사람이라 변방에 보내어 시험해 보려고 한다.” 하고 그
대로 보냈다 한다.

그만큼 국왕의 신임을 받았던 공은 회령판관으로 있을 때 때로 며칠분의 식사를
한꺼번에 하기도 하고 또 며칠씩 굶기도 하면서 말하기를 “무장(武將)된자 누구나
평소부터 이러한 습성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전심전력을 다해서 묵
은 폐단을 뿌리뽑고 백성을 자기 가족과 같이 잘 돌보니 오랑캐의 무리도 그의 높
은 덕에 감화되어 귀화해 오는 자가 많았고 공을 대야(大爺: 큰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한다.

1542년 (중종 37년) 임기가 끝나 돌아와서는 이조좌랑(吏曹佐郞) 홍문관교리(弘
文館敎理) 이조정랑(吏曹正郞)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전한(典翰) 등을 두루 지냈다.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제주목사로 쫓겨났다
가 파면되었다.

1547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나라정치를 마음대로 하고 이기(李賠)등이 권세를
잡고 국정을 그르쳐서 나라가 망하려 하니 이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라는 양재역
(良才驛) 벽서사건으로 소윤 윤원형(尹元衡)에게 대윤 윤임(尹任)의 일파로 몰려
34세의 나이에 사사(賜死)되었다. 정미사화(丁未士禍)이다. 사약을 들고 "이 술은
주거니 받거니 할 상대가 없구나"하며 크게 울 었다. 옆에 있던 종이 울면서 안주를
올리니 공이 "상여군들의 벌주도 안주를 못 먹게 하는데 하물며 이 술이 어떤 술이
라고 안주까지 먹겠냐"하고 태연하게 마시고 겨우 10세 된 아들에게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였다.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 등과
친교를 맺고 학문과 덕행을 쌓았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났다. 유고(遺稿)로는 금
호집(錦湖集) 한권이 있다.

                         <금호유고>

<悼林士遂寃死作短歌(도임수재수원사작단가)>라는 제목의 하서 김인후가 지은
시조가 있다.

엊그제 베어버린 소나무는 가지 축축 늘어진 큰 소나무가 아니었던가?
잠시만 그대로 두었던들 큰 대들보감이 되었을 터인데.
아! 명당(대궐)이 기울면 어느 나무로 대들보를 삼아서 떠받칠 것인가
?

 유적지

광산구 광산동 임곡동사무소에서 남쪽으로 약 5km 지점에 등림사(登臨祠)가 있고
나주에는 그를 배향한 송재서원(松齋書院)이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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