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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6 전체: 1413735

 

 시조 시인 조운

 ▷ 조운(曺雲: 1900.7.22-?)  

1900년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정주랑(靜洲郞),
본명은 주현(柱鉉)이고 운(雲)은 필명이다. 목포상업전수학교를 졸업하였으
며, 1919년 영광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만주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어 옥
고를 치렀다. 1922년 시조 동호회인 추인회(秋蚓會)를 결성하였으며, 영광학
원의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일제강점기의 사회 계몽운동에 힘썼다. 1926년 프
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항하여 가람 이병기 등과 국민문학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37년 영광삐라사건으로 투옥되어 1939년에 출옥하였다. 1945년에 조선문
학가 동맹에 가담했으며  8·15광복 후인 1947년에 동국대학교에서 시조론과
시조사를 가르치다가 1948년에 가족과 같이 자진 월북하여 북쪽에서 인민회
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월북한 뒤로 잊혀진 문인이 되었다가 1988년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 문학사적 위치가 재조명되어, 1990년
9월에 유족과 영광 지역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운문
학전집》을 출간하였으며, 2000년 7월에는 탄생 100주년 기
념사업회가 주관하여 《조운시조집》을 복간하였다.
이 시조집에는 1947년의 초판본에 수록된 작품들과 그 후에
발표한 시조 및 자유시가 망라되었다. 탄생일에 맞추어 고향
인 영광 지역에 시비(詩碑) 제막식을 갖기로 하였으나 훼손
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0년 9월에 제막식을 가졌다.   

 ▷ 조운의 문학세계

1921년 동아일보에 《불 살라주오》를 게재하는 등 초기에는 자유시를 썼으
나 좋은 평을 얻지 못하였고, 이후 1925년 《조선문단》에 《법성포 12경》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시조 창작에 매진하였다. 그는 고어투에서 벗어난 일상
어로 생활에서 느끼고 경험한 구체적인 소재를 담아 시조가 현대적인 율격과
내용을 갖추도록 만든 선구자였다. 시조라면 버려야 할 구시대적인 유산으로
여기던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적 무의식에서 벗어나 시조 특유의 운율을 잘 살
리면서 우리 민족의 서정과 정감이 오롯이 배어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현대
시조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에 사설시조의 전형으
로 꼽히는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석류》 《파초》 등이 있다.

파초(芭蕉)

펴이어도
펴이어도 다 못 펴고

남은 뜻은
고국이 그리워서냐
노상 맘은 감기이고

반드시 펴인 잎은
갈갈이
이내
찢어만 지고

구룡폭포(九龍瀑布)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劫이나 轉化해야 金剛에 물이 되나!
金剛에 물이 되나!

샘도 江도 바다도 말고 玉流 水簾 眞珠潭과 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
과 서리 비로峰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連珠八潭 함
께 흘러

九龍淵 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석류(石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불갑사 일광당(佛甲寺 一光堂)

窓을 열뜨리니
와락 달려 들올듯이

萬丈 萬綠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꾀꼬리
부르며
따르며
새이새이 걷는다  

 ▷조운 시비

작가 조운은 월북 작가라는 점 때문에 그의 시비 건립과 장소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다. 갈등 끝에 결국 영광군 영광읍 남천리 한전사거리에 세워지게 되었는데
시비에는 그의 시조 '석류'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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