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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4 전체: 1428442

 

조위의  만분가

 ▷ 조위(曺偉,1454-1503)

호는 매계(梅溪). 조선 전기 문인. 창녕인.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檢閱)이 되고 76년부터 사가독서한
뒤 79년 영안도경차관(永安道敬差官)이 됨.
호조참판,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겸
부제관을 지냄.

연산군때 [성종실록] 편찬 도움.
성종 때(1481) 유윤겸, 의침과 함께 초간본
<두시언해> 간행에 참여.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실록> 편찬할 때 함께
일한 김일손이 그들의 스승인 김종직의 <弔義
帝文(조의제문)> 을 수록, 연산군 4년, 성절사
(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 도중 무오사
화를 만나 결국 이에 연루되어 귀양지 순천에서
50세로 죽음.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 황간(黃澗)의 송계서원(松溪書院)에 제향.
문집에 《매계집(梅溪集)》, 글씨로는 《조계문묘비(曺繼門墓碑)》가 있음.

만분가(萬憤歌)

천상 백옥경 십이루 어디멘고

오색운 깊은 곳에 자청전이 가렸으니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말동

차라리 죽어져서 억만 번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의 넋이 되어

이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 동리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바람에 흘리 날아 자미궁에 날아올라  

옥황 향안 전에 지척에 나가 앉아

흥중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하략)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자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하여
귀양간 유배지 순천에서 1503년에 지은 248구의 가사 작품이다.

내용은 서사,본사,결사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서사에서는 유배지에서 왕에게 흉중의 말을 실컷 호소하고 싶어 쓴다는 동기가
나타나 있고, 본사에서는 사화로 인해 전일의 영화가 현재의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로 바뀌었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황제의 처분만 바란다는 내용(자기를
굴원에 비유)이, 결사에서는 원한에 쌓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
구든 제뜻을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평생을 함께 사귀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만분가'는 조선 전기 당쟁으로 인하여 희생된 신하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유배가사의 효시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진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후대의 유배가사 전개에 끼친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 생가 터

유허지인 경북 김천시 봉계에 후손들이 율수제를 건립하여 현재까지 보존해 오고
있으며, 1989년 표석 와비를 세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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