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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조정래의 태백산맥

 조정래(趙廷來, 1943년생)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아버지 조종현과 어
머니 박성순 사이의 4남 4녀 중 넷째(아들로
는 차남)로 태어남. 아버지는 시조시인이자 대
처승이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순천에서 겪었고 19
49년 순천 남국민학교 입학했으며 1950년 충
남 논산에서 6.25를 맞았고 1953년 숙부들이
살고 있던 벌교로 이사. 최초의 자작 문집을
만들었고, 글짓기에서 전교 1등상을 탐. 1956
년 광주 서중학교 입학하여 제 34회로 졸업했
고 1959년 서울로 이사, 1962년에 보성고등학
교를 졸업하고 이어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에 시인 김초혜와 결혼
함. 1970년 <누명>이「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우리나라 분단 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태백산맥>과 연달아 써낸 <아리랑>이
모두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단편집에는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
리는 땅> <황토> <恨, 그 그늘의 자리>가 있고, 중편집에  <유형의 땅>, 장편소설에
<대장경> <불놀이>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이 있다.

작품 <유형의 땅>으로 현대문학상, <인간의 문>으로 대한민국문학상, <메아리 메아
리>로 소설문학작품상, <태백산맥>으로 단재문학상 수상을 수상했으며, <태백산맥>
이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 작가와 작품 세계

조정래에 의하면, 그의 문학을 일군 지렛대는 `가난`과 `분단`이다. 초등학교 시절, 눈
비 오면 머슴이 업고 오던 도련님들과 한 반에서 공부를 할 때 저절로 `저래선 안 된
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문학 청년 시절 거주지인 서울 성북동 달동네의 남루한 이웃들을 보면서는, 문학이
이들을 외면하고서 과연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6·25 때 미군이 군
홧발로 안방까지 치고 들어오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기억도 두고 두고 살아남아, 분
단 문제가 조정래 문학의 화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 진학한 조정래는 문학이 갖고 있는 숭고한 정신에 무릎꿇다시피 경배하면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시공을 초월하는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원했다. 6·3세
대에 속하는 그는 동국대 총학생회 학예부장을 지내며 거의 모든 격문을 도맡아 쓰
다시피 했으며, 두 차례의 신춘문예 낙방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한 문학 청년이었다.

제대와 등단 그리고 유신시절 3년 동안 중경고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나 그의 문학성
향을 알아본 군 장성 출신의 교장은 그를 보고 당장 나가라고 했다. 그 뒤로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1983년 9월 「현대문학」에 <태백산맥>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의 문학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등장인물이 486명에 이르고, 쌓아 놓으면 자기 키보
다 10cm가 높은 원고지 1만6천5백매 분량의 <태백
산맥>을 집필하는 동안, 조정래가 양복 입고 외출한
것은 1년에 한두번에 불과했다. 전화도 안 받는다.

조정래는 집필기간 동안의 자기 처지를 `글감옥`에
갇힌 것에 비유하곤 한다.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먹고 자고 쓰고, 먹고 자고 쓰고의 연속'이 그의 생
활의 전부다. 그래서 ` 앉은 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침 7시 기상,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 아침밥, 오전
작업, 1시간 쯤 낮잠, 점심 식사, 체조, 오후 작업, 저
녁 식사, 뒤로 달리기, 잠깐 눈 붙이기, 야간 작업. 이
런 강행군으로 하루 원고지 30장을 어김없이 채워 넣
고야 자리에 든다. 그 시각은 늘 다음날 새벽 1∼2시. 이 고된 작업을 그는 컴퓨터의 도
움도 받지 않고 직접 손으로 해낸다. 당연히 그의 어깨는 정상이 아니다. 이 `직업병`의
치료를 위해 그는 틈만 나면 손바닥에 가래를 쥐고 주물럭거린다.

민족사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동시에 민족의 저력과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담아
내는 주제의식, 전라도 토속어의 질박한 구사, 탄탄한 서사구조 등 조정래 문학의 장
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1994년에는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여 경찰에
입건되고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 받는 수난도 겪었다.

위의 사진은 태백산맥(맨왼쪽)과 아리랑(가운데), 한강(오른쪽)의 원고를 쌓아놓고
작가가 손자와 함께 서 있는 사진이다.

 태백산맥(太白山脈)

<태백 산맥>은 4부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恨)의 모
닥불’이라 이름 붙은 제1부 세 권은 여순(여수와 순천)반란
사건이 진압된 직후인 1948년 10월, 자금 조달을 위해 정하
섭이 무당 월녀의 집을 찾아드는 데서 시작하여 같은 해 12
월까지를 다루고 있고, 제2부 ‘민중의 불꽃’(4, 5권)은 염상진
일행이 율어면을 해방구로 장악한 1949년 1월부터 농지 개혁
법이 곧 통과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지주들의 논
빼돌리기가 자행되고 이에 격분한 농민들이 궐기하는 1949년
10월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3부 ‘분단과 전쟁’(6, 7권)은 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10월
부터 미군의 개입으로 남한 대부분을 점령했던 인민군이 압록
강까지 후퇴하는 1950년 10월까지를, 제4부 ‘전쟁과 분단’(8,
9, 10권)은 1950년 11월부터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빨치산(월북하지 못하고 지리산
과 백아산 등에 잔류한 공산당들을 가리킴)투쟁이 궤멸되는 1953년 10월까지를 다루
고 있다. 1948년 10월부터 1953년 10월까지 5년에 걸친 격동기를 다루고 있는 셈인데,
공간적 배경은 1부와 2부 1권까지는 벌교만에 한정되어 있다가 2부 2권에서 중도적
좌파 민족주의자 김범우가 서울로 유학감에 따라 서울로 확대되고, 전쟁이 발발한 후
부터는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 전주, 평양, 압록강변, 거제도 포로 수용소까지 확
대된다.

대하소설답게 등장 인물도 많아서 100명을 넘고, 전쟁 이후부터는 공간적 배경의 확
대와 더불어 무수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태백 산맥>의 표면적인
주요 등장 인물들은 김범우, 염상진, 손승호, 하대치 같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태백 산맥’이라는 광활한 피륙을 짜는 데
참여하고 있다.

<태백 산맥>의 가장 뛰어난 성취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해방 직후 좌우의 대립이 단
순한 이념 대립이 아니라 지주─소작 관계라는 철저한 착취 제도에서 필연적으로 비
롯된 것임을 규명해 보려는 데 있다.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의 격동상을 반공주의의 편
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점이나 그것을 추상적인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물적 토대를 가진 역사적 현상으로 파악하려 한 점은 이 작품을 분단
이후 우리 문학이 성취한 중요한 결실로 꼽을 수 있게 한다.

<태백 산맥>의 또 하나의 특징은 민중사를 민중들의 질박한 생활상 속에서 구현하
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들의 살아 있는 입담이나 생활상과 개인의 내면 세계가 매우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단순히 역사의 무게에
눌려 인물들을 이념에 짓눌린 메카폰적 인간으로 도식적으로 그려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정 문제나 인간적인 갈등까지 그리고 있어 생동하는 인물 군상을 형상화하
였다.

이 소설은 여순 반란 사건을 전후로 한 우리 역사의 한 시기를 매우 상세하게 그려 내
고 있어 격동의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지주, 소작 관계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 관한 역사적 지식뿐
만 아니라 그 속에서의 사람살이를 눈물겹게 때로는 아름답게 꾸려 낸 우리 민족의
생생한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작가의 말

분단과 6.25를 다룬 소설은 많습니다. 그러나 <太白山脈>만큼 이를 깊고 넓고 핍진
하게 형상한 소설은 없습니다. 한 권위있는 비평가이자 냉정한 문학사가로부터 "우
리 문학이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해방 40년의 기간이 필요하였다"란 경이에 찬
표현을 얻은 <太白山脈>은 다시 말하려도 새삼스러울 지경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太白山脈>의 문학적 의의를 상기하는 의미에서 몇가지 논점들을 간추려 덧붙입니다.  

첫째, 우리 현대사에 얽힌 복잡한 이데올로기를 그 뿌리로부터 더듬어 나와 그것이
어떻게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로 감겨 들어갔는가를 벌교라는 소읍을 무대
로 탁월하게 형상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의 발생학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러나 이를 역사학이나 여타 사회과학에서처럼 객관적인 연표나 통계 혹은 史實이
나 서술로 안 다루고 토지를 둘러싼 지주와 소작인의 계급적 갈등과 얽힘을 통해 현
실감  있게 풀어 이데올로기와 분단과 전쟁을 간접적으로나마 정당하게 체험케 했다
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뿌리로부터 더듬어 나왔다는 말은 곧 이데올로기의 안쪽을 돌
아 그 생김과 갈래와 성격을 인물들의 행동과 정념, 그리고 그들간의 갈등을 통해 눈
에 보이듯 그렸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문학사에 소중한 일로서, 같은 시대를 배경
으로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소설들에서는 못 거둔 성과임에 분명합니다. 곧 여타 소
설들이  이념적 선입견을 지닌 채 이데올로기의 바깥에서 접근해 감으로써 이념적 허
무주의에  빠지거나 이데올로기의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관념적 반향을 즐긴 반면,
<太白山脈>은  민중들의 곤핍한 살이에 착목해 거기서 생기고 자라고 뻗는 이데올로
기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추적하고 이를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의 국제 정치적 역
관계 속에 얽고 짜  분단과 전쟁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적 참화를 온전히 떠올려 낸 것
입니다.  

둘째, <太白山脈>이 구축한 독창적인 역사적 담론입니다. 이른바 '선택적 결정'이 그
것입니다.  '선택적 결정'이란 휴전 이후 곧바로 박헌영을 비롯한 이승엽, 이강국, 임
화 등 12인을 숙청한 일을 이해할 수 없어 퍼부은 이해룡의 공세적 질문에 김범준이
내뱉은 답변입니다. 그런데 이 '선택적 결정'이란 이른바 '94호 결정서'의 '전쟁 책임
규정' 항목, 곧 전쟁 책임을 '남조선 내 단체들의 잘못'으로 돌린 데 이미 예비돼 있던
것으로, 이전의 누구도 속 시원히 해명 못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훌쩍 뛰어넘은 작가
의 득의의 담론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선택적 결정'을 한 조선 노동당 당국보다 이들의 결정
에 승복하는, 김범준을 위시한 빨치산 혁명가들의 모습입니다. 이는 이념의 옳고 그
름을 떠나 역사와 신념에 자신의 온몸을 던진 혁명가의 숭고한 정념을 드러내주는
부분으로, 지주-소작인의 갈등과 민중들의 곤핍한 살이에 착목해 이데올로기의 안
쪽을 파고든 작가의 의도와 수미상관하며 분단-역사소설로서의 이 작품을 참으로
살아 숨쉬게 합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안쪽을 파고든 작가의 소설적 동력이 이데
올로기의 벽을 어떤 식으로 돌파해 나오는가를 보여 줌과 아울러 분단 이후 우리를
옥죄어 오던 이데올로기의 단단한 껍질을 우리가 어떻게 벗어던질 수 있는지를 생생
하게 시범해 보이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셋째, 인물의 전형화가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우리 현대사의 이념적 프리즘은 참으
로 다양하게 분광되는 바, 그 다양한 이념의 가닥들을 현대사 속의 누구를 꼭 짚지
않더라도 <太白山脈>의 전형적 인물들이 온전히 대체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더구
나 꼭 역사적 거물이나 거창한 이념이 아닌, 이름없는 민초들의 살이와 소박한 생각
들 조차 그런 전형화와 핍진성을 구현하고 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염상진,
하대치, 김범우, 손승호, 심재모, 권서장, 염상구, 남인태, 임만수 등 수다한 실례를
우리는 작품 속에서 다 헤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넷째, 작품 속의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이는 "소설 속의 모든 언어는 하
나의 관점이며 실재하는 사회집단과 그 집단의 구체화된 전형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적, 이념적 개념체계"이고 "소설의 본질을 이루는 어떠한 세계관도 사회적으로 구체
화된 관점이어야지 추상적이고 순수한 의미론적 입장이어서는 안된다"라는 바흐찐의
견해를 상기시키는 특징으로서, <太白山脈>의 득의의 면모라 할 것입니다. 이 사투리
는 특히 '민중들의 곤핍한 살이에 착목해" 이데올로기를 그렸듯이, 전남 벌교라는 소
읍을 무대로 한반도의 분단 문제를 그리는 데 필연적으로 동원된 민중언어라 할 것입
니다. 이와 아울러 전라도 사투리는 분단 문제를 민중적 관점에서 다루겠다는 작가의
"구체화된 관점"을 구현해 줌과 동시에 조정래를, "추상적이고 순수한 의미론적 입장"
에 서서 공식화된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서 분단 문제에 다가간 다른 작가들과 구별시
키는 소중한 문학적 덕목이라 할 것입니다.  

 ▷ 작가의 인터뷰

"탈고하고 한 달 동안은 소설을 끝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누워도
소설의 주인공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그는 태백산맥의 시작
을 기점으로 아리랑을 탈고하기까지 10년 8개월을 원고지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살
았다. 최근 몇 개월은 그가 10년 8개월만에 처음 경험한 휴식이었다....

"식민치하 36년동안 일제의 총칼에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3백만 명에
서 4백만 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아리랑>에 바친 원고지 1만8천장의 글자 수와 비
슷하죠. 원고지 한칸 한칸마다 이름없이 스러져 간 원혼이 배어 있는 느낌에 사로잡혀
펜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 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
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
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
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 태백산맥에 나오는 지명들 ('벌교사랑' 사진자료)

 <벌교역, 철다리, 김범우의 집, 남도여관, 중도방죽, 진트재, 횡갯다리(보물304호), 소화다리, 현부자집, 소화집, 부용산, 제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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