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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동다송과 초의선사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

성은 장씨(張氏)이며, 자는 중부(中孚), 법명은 의순
(意恂)으로, 초의는 호이다. 조선 정조 10년(1786)음력
4월 5일에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나주군 다도면 운흥사로 찾아가 벽봉 민성(敏聖) 스님께
문하에서 출가하였다. 그후 해남 대흥사에서 완호(대흥
사 제9대 강사)스님을 뵙고 구족계를 받았으며 초의라
는 호도 이 때에 받았다.

초의선사는 선(禪)과 교(敎)의 양면이 두드러지게 발전
했던 대흥사의 법풍을 수용 전승한 인물이다. 또한 탱화를 잘 그려서 당대 오도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님의 작으로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는 영정신상이 두 폭이나  있다.  

그리고 단청도 잘하여 조사 스님들을 모신 대광명전과 보연각을 짓고 손수 단청을 해
서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글씨는 일가견을 이루어서 뛰어났고 특히 예서를 잘 썼다.
추사 김정희와는 평생에 지우였으나 추사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별개의 글씨를 썼다.

24세때에 강진에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를 만나 깊은 교유를 맺으면서 다
산에게서 유서와 시학을 배운 후에는 교리에도 정통하고 선리에도 밝아 선경에 들어
운유의 멋이 있었다. 39세에는 일지암(一枝庵)을 중건하고 은거지로 삼았다. 스님은
이곳에서 선의 논지를 밝혀 초의선과(艸衣仙課)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를 저
술했고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써서 차 생활의 멋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의 불교 사상 또한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으로,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
悅)을 맛본다고 하였으며, 좌선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멋
을 찾고 불법을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50세(1835)때에는 소치 허련은 일지암으로 찾아와 제자가 되어 시,서,화,다를 3년간
가르쳤다. 55세(1840)때에는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大覺登階普濟尊者) 초
의대종사(艸衣大宗師)라는 사호를 받았다. 불학 이외에도 유학, 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고,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저서로는 일지암시고, '동다송(東茶頌)' '초
의시고(艸衣詩藁)'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일지암문집, 초의선과, 다신전(茶神
傳), 진묵조사유적고, 문자반야집, 등이 있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
였다.

▷ 시

귀고향(歸故鄕)

고향 떠난 40년에 돌아오니 백발이 성성하네
마을은 풀섶에 덮어지고 집은 간데 없어
옛 무덤엔 이끼만 가득하고 발자국마다 수심 고이네
중심을 잃었는데 한은 어디서 생기는지
피가 말라 눈물도 흐르지 않네
외로운 중 다시 구름따라 떠나노니,
아서라 수구초심(首邱初心)이란 말 부질없구나
!  

▷ 동다송(東茶頌)

동다송(東茶頌)은 다신전을 초록한지 약 10년 후
에 정조의 사위인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洪顯
周)가 진도 부사인 변지화(卞持和)로 하여금 초의선
사에게 茶道에 대해 물어와 그 청을 받아들여 이루
어진 것이다.

동다송은 초의선사가 스스로 "고인소전지의근술(古
人所傳之意謹述)" 이라고 말했듯이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송(頌)마다 고인(故人)들의
여러 문헌과 시구(詩句)를 인용하고 주(註)를 달고
있다.

특히 한국 차에 대하여 송(頌) 형식으로 지은 책이다.
모두 31송으로 송마다 옛날 사람들의 차에 대한 설명과 시 등을 인용하여 주를 붙였다.
동다송은 한국 차에 대한 송이라는 뜻이나, 한국 토산차에 대한 송은 6송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국 차에 대한 신기한 전설을 중심으로 하는 차의 효험, 생산지에 따른 차의
이름과 그 품질, 다도의 구체적인 내용인 차를 만드는 일, 물에 대한 품평,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구체적인 법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저자의 다도정신은 그의 다선일미
사상(茶禪一味思想)과 통한다. 이 책은 한국 고유의 다서(茶書)로 평가되고 있다.

제1송

후황가수배귤덕 (后皇嘉樹配橘德)
수명불천생남국 (受命不遷生南國)
밀엽투산관동청 (密葉鬪散貫冬靑)
소화탁상발추영 (素花濯霜發秋榮)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의 덕과 짝지으시니
받은 명 변치 않아 남녘 땅에 자란다네
촘촘한 잎은 눈 속에서도 겨우내 푸르고
하얀 꽃은 서리 맞아 가을에 꽃피우네

제2송

고야선자분기결 (姑射仙子粉肌潔)
염부단금방심결 (閻浮檀金芳心結)
항해수청벽옥조 (沆瀣漱淸碧玉條)
조하함윤취금설 (朝霞含潤翠禽舌)

고야선인의 뽀얀 살결마냥 깨끗하고
염부단금 황금꽃술 아름답게 맺혔네
맑은 이슬 흠뻑 젖어 푸른 가지 벽옥같고
아침 안개 촉촉히 젖어 푸른 싹 새 혀같네

제3송

천선인귀구애중 (天仙人鬼俱愛重)
지이위물성기절 (知爾爲物誠奇絶)
염제증상재식경 (炎帝曾嘗載食經)
제호감로구전명 (醍澔甘露舊傳名)

하늘, 신선, 사람, 귀신 모두 아껴 사랑하니
너의 됨됨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하구나
옛날 염제신농씨가 너를 식경에 기재했고
제호라 감로라 예로부터 그 이름 전해왔네
 

▷ 유적지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 94-3번지 일원에는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해남 대흥사
에는 일지암이 있으며 또한 초의선사 동상도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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