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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6 전체: 46

 

 한승원의 안개바다

 ▷ 한승원(韓勝源: 1939.10.8-)  

전남 장흥 출생. 1954년 장흥고교에 입학, 당시
문예부장이던 선배 송기숙을 만나 교지 《억불》
을 창간하고,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수업에 열중
하였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에 입학하여 김동리에게 소설을 지도받았다. 19
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
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72년 첫 소설집 《한승원창작집》을 출간했으
며, 광주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소설문학》 동인
을 구성하고 활동하였다. 1974년 연작소설 <한1
-어머니>를 집필하면서부터 민족정서인 한(恨)의
문제에 천착하며 판소리에 빠져들었다. 1975년
연작소설 <한2-홀엄씨> <한3-우산도>를 발표하
면서 고향인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한 토속적인 세계와 역사의식을 통해 민족
적인 비극과 한을 소설화하는 데 자신감을 가지고 독자적인 소설세계를 이루었다.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문학인생은
고향인 남해 바닷가에 뿌리를 두었다. 그의 소설은 운명의 올가미에 한이 서린 인
간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 근원을 이야기한다. 데뷔작 <목선>에서부터 <포구1> <해
변의 길손> <해산 가는 길> 등에 이르기까지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고향
장흥의 남해 바닷가를 그렸다. 

1980년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1982), 한국문학작가상
(1983), 현대문학상(1988),  이상문학상(1988), 한국해양문학상(1997), 현대불교
문학상(2001), 미국의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소설집 《한승원 창작집》(1972) 《앞산도 첩첩하고》(1977) 《여름에 만
난 사람》(1979) 《신들의 저녁노을》(1980) 《신화》(1981) 《불의 딸》(1983)
《포구》(1984) 《우리들의 돌탑》(1989) 《해산 가는 길》(1997) 등이 있고, 수필
집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1993)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1996)
《스님의 맨발》(1998) 등이 있으며, 시집 《열애일기》(1991)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1995) 등이 있다.

 ▷ 연작소설 안개바다

국민학교 저학년인 식이라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그의 아버지(고영만 씨)는 그의 마을에서 제일 많은 농사를 짓고 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논을 장만하는 것보다는 배나 그물 장만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 그러
나 그들은 농토 많은 사람들을 미워한다. 식의 아버지가 농토를 많이 산 것은 구
장이나 총대를 하면서 공금을 긁어 먹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의 집에는 아기업개로 순이가 들어와 있는데 그의 작은아버지가 그녀를 건드
린다. 그녀의 오빠가 그 분풀이로 육이오 때 그의 작은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작
은누이를 윤간시킨다.

-그의 매형은 순이 오빠와 함께 여순반란사건 때 설치던 사람으로, 반란사건이
진압된 뒤 잡혀 토벌되어 죽게 된 것을 그의 아버지 힘으로 살아난다. 육이오 때
는 보안서 부서장을 지낸다. 그는 뒤에 장인집 골방에 숨어 있다 체포된다.

-그의 아버지는 여성동맹에 다니는 순이 때문에, 그녀가 그를 죽이게 되어 있는
날 도피하라고 귀띔해 줘서 살아난다. 순이는 유격대원하고 살다가 정식으로는
시집 안 간, 그러나 애 밴 과부가 된다. 그녀는 애인의 집에 가 애를 낳아 주려 한다.

-작은누이는 자살을 한다. 

「석유등잔불」,「안개바다」「꽃과 어둠」의 연작들은 한승원의 소설 중에서 제일
빛을 발하는 것들이다. 이 연작은 화자인 아이들은 그 의미를 모르는 사건들을, 아이
들의 눈으로 그려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끼리의 놀이, 성, 일하기 등등이 섬세
하게 드러나 있는 그 연작은 줄거리보다 차라리 그 섬세성에 관심을 두고 읽고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심리에 섬세하다. 그 섬세성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려 한 것은, 부유
한 사람들의 관대함, 자기 기만, 가난한 사람들의 공격본능, 시골 처녀들의 갇힌 성,
시골사람들의 종족보존욕, 삶의 지혜 등이다. 그러한 것들은 보통 때에는 일상적 삶
속에 갇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격동기에는 삶의 수식이 없어지고 삶 그것만이 벌
거벗은 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삶은 추상적인 삶이 아니라, 생존 차원의 삶이어서,
개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어린아이의 눈은 그런 삶을 비
판 없이 혹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소박하게 드러낸다. 그 소박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라서 그것들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고, 자신
의 삶을 그것에 비추어 살아갈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 작가의 말

서재에 출몰하는 지네를 잡아먹어 달라고 닭 다섯 마리를 사다가 정원 잔디밭에 놓아
먹인 적이 있다. 지네의 발원지는 정원의 잔디밭이므로.암탉 네 마리를 거느린 수탉은
틈만 나면 울었다. 아니 간헐적으로 노래부른다고 말해야 한다. 노래하되 매우 힘들게
했다. 그놈의 노래하는 것을 보면 그 노래하는 행위가 장난삼아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한 번의 노래가 아주 근엄하게 치르는 하나의 행사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두 다리를 보통때보다 약간 더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약간 낮추고 몸을 앙바틈하
게 만든다. 마음 놓고 한 곡조를 멋지게 뽑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다음은 하늘을 향해 가슴을 넓게 펴고는 두 날개를 활짝 펴서 머리와 등 위쪽으로 높이
올라가도록 저어 바람을 일으키고 엉덩이 부분을 툭툭 치고 나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길게 빼 늘여 살짝 젖히고 목청껏 노래한다. 

가능하면 가느다랗고 긴 고음을 아름답고 곱게 뽑으려 한다. 그러할 뿐만 아니라 소리
의 강약을 조절하고 여운이 오래 남게 하려고 동원할 수 있는 데까지 기량을 모두 동원
한다. 

어떤 때는 한번 울고 나서 다시 거듭 두 차례 세 차례나 노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좀
전에 부른 노래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다. 

처음, 그놈의 노래에 대하여 잘 몰랐을 때, 그놈의 삶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그놈의 노래 소리에 진저리가 났다. 그놈은 내 서재 창문 앞에
와서 자기 목청껏 울어대곤 했다. 나는 작업을 중단하고 창문 앞으로 가서 그놈을 향해
‘시끄러!’하고 소리쳤다. 그놈은 자기에게 화를 내고 소리쳐 말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
겠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나에게 들으라는 듯 다시 고운 목청으로 한 곡조를 뽑고
나서 으스대며 자기 암탉들에게로 갔다. 

나는 오래지 않아 그놈의 심사와 성정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자 암탉을 지키고 영역을 선포하는 일이다. 그놈은 살아 있는 한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는 한 살아 있는 놈이다. 노래 부르는 일이 그놈을 신명나게 하는 것이다. 신명이 그
삶을 살맛 나게 하는 것 아닌가. 

수탉에게 있어서 사는 재미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암탉과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상관
하지 않고 교미를 하는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해 한껏 고운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만일 그놈이 암탉과 교미하려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그놈의 건강에 이
상이 있다고 짐작해도 된다. 수탉을 키우는 한 그놈의 교미 광경을 보아야 하고 노래 소리
를 들어야 된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인들 수탉하고 똑같지 않으랴. 

내게는 수레바퀴같은 두 목숨이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목숨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적 목
숨이다. 그 둘 가운데 하나가 부서지면 내 수레는 존재의미를 잃게 된다. 살아 있는 한 소
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 사람아, 지금까지 쓸 만큼 썼지 않은가? 이제는 제발 소설 좀 그만 써라’고
나에게 말한다면, 내가 수탉에게 ‘시끄러!’하고 말했을 때 수탉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멀
뚱하게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주위 사람들은 내가 소설을 거듭 써내
는 것을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유학(儒學)은 사업을 통해 정심에 이르고 정심(正心)에 이르려고 사업(事業)을 하는 것
이라고 다산 정약용은 말했다. 

사업이란 무엇인가. 주역의 계사상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형이상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촵실천)라 하고 음양이 서로 작용
변화하고 서로 견제하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음양의 법칙에 따라 진행하는 것을 통
(通)이라 하는데, 그 이치를 들어 천하 인민에게 실행하는 것을 사업(事業)이라 한다.
상(象 우주의 참모습 혹은 진리)은 성인이 천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법칙을 보
고 그 형용을 모방하여 물건에 적의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우주의 이치를 들어 천하 인민에게 실행해 보이는 사업은 공자가 말한 어짐(仁)일 터이
고, 어짐은 정다산 같은 실학자가 말한 '효도(孝)하기, 아래사람 사랑하기(弟), 가엾은
사람 구제하기(慈)'일 터이다. 

사업 혹은 어짐은 플라톤의 이데아일 터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저술을 했다. 정적들이 그를
없애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는 그는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외롭고 슬펐을
것인가. 그러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일(사업)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어지러운 마
음을 평정(정심)하였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갇혀 살지 않았다면 그 많은 저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의
정다산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갇혀서 한 사업이 그를 만든 것이다. 

사람은 가두어 놓고 살기를 좋아하는 영리한 동물이다. 들과 산에 사는 동물들을 끌어
다가 울타리를 치고 가두어 길러 필요한 때에 잡아먹고, 집을 짓고 담을 쌓고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들을 그 안에 가두어 놓고 기르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나라와 고을과 마
을을 만들고 성을 쌓고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다스린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속에 갇
혀야만 편안해진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마저도 가둔다. 혼자 살기 두려우므로 무리를 지어 그 속
에 자기를 가둔다. 무리는 이념을 가지게 되고, 모든 개인은 그 이념 속에 갇히게 된다.
자의반 타의반에 갇혀 산다. 모든 사상, 모든 주의 주장, 심지어 종교까지도 하나의 이
념일 수 있다. 

자기 가두어 놓고 살기에 염증이 나면 자기를 풀어 놓으려 한다. 그렇지만 오랜 동안 자
기를 풀어 놓지 못하고 곧 다시 가두어 놓는다. 자기 가두어 두기와 자기 풀어 놓고 살기
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없이 거듭된다. 따지고 보면
자기를 풀어 놓는다는 것이 사실은 더 확실하게 자기를 자기 이념과 사상 속에 가두는
것이다. 

수탉은 자기가 늘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념과 사상의 강박 속에 갇혀 산다. 목청
껏 노래하지 않으면 수탉일 수 없다는 의식이 속에 깊이 숨어 있다. 그것이 사업이다.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신명이 나지 않고 신명 나지 않는 삶은 죽음 한 가지이다. 사람은
신명(사업)을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 신명 속에 갇혀 사는 신명의 노예이다. 

그 사업은 무엇인데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꽃이 왜 피는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
문, 나는 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하고 같을 터이다. 

나의 삶은 나의 본래 모습(원형)으로 회귀하려 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
다. 그 뿌리는 우주 생성의 첫 순간으로 뻗어 있다. 애초에 불과 물만 있었고, 그것이 땅
을 만들고 땅이 푸나무와 짐승을 만들었다. 푸나무를 짐승이 먹고, 사람이 푸나무와 짐
승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텅빈 하늘로 날아갈 꿈을 꾸
고 산다. 

하늘은 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은 완성된 존재이다. 그것은 우주를 만든 불과 물의
영혼일 터이다. 우주의 원형이 그것이다. 소라고동의 나선처럼 한사코 오른쪽으로 돌
려고 하는 무늬가 내 속에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독자에게 우리 삶의 진실에 대하여 질문하기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
는 살아 있는 한 끝없는 우주의 율동에 대한 의문 속에 잠겨 있고, 그는 늘 그 의문을 수
탉처럼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자기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독자로부터
증명받기이다. 

정다산은 강진에서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마다 그것을 하필 고해절도인 흑산도에서 유배
살이 하고 있는 형 약전에게 보내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약전 또한 자기 저술을 동생
약용에게 보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수탉과 꽃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리쳐 노래하고 울긋불긋한 색깔로 자기 몸을
치장하고, 또한 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자기 노래의 아름답고 고귀함을 증명 받고 싶
어 하고 눈 가지고 코 가진 것들로부터 고혹적인 교태와 향기를 증명 받고 싶어한다. 어
니스트 헤밍웨이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와 로맹
가리가 왜 자살을 했는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2003/05/21>

 ▷ 최근의 동향

1997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 수문포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해산토굴(海山土窟)'을 짓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고향 장흥군에서는 포구 갯바위에 문학비를 세웠다.
 2016년에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을 한 소설가 한강이 그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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