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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6 전체: 1428444

 

시인 황지우

황지우(黃芝雨: 1952-)

전라남도 해남 출생.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 강제 입영하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 1985년부터 한신대학교
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였고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
고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가
총장까지 역임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
고, 《문학과 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등단하였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새들도 세
상을 뜨는구나》(1983)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
는 전혀 다르다.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
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극단 연우에 의해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나는 너다》(1987)에는 화엄(華嚴)
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또한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게눈 속의 연꽃》(1991)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199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였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는 '시 형태 파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시적 화자의 자기 부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탕하되 편안한 느낌을 준다.
또한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시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
피아를 꿈꾸었다.

그 밖에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등의 저서가 있고,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
에로 》(1985),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등우량선》(1998) 등의 시집이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이 시에서처럼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얽어매는 관념이었다.
실제로 국가 권력은 항상 국민들의 애국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 시에서 애국가는 관중들을 일어서게 하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포
기하고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으라고 강요하는 정치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고 있
다. 시인은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애국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억압하는 유신
정권 시대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출가하는 새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으로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 본다.

▷ 작가의 말

새로운 시의 길을 찾아서

시의 출발은 항상 사춘기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를 처음 썼던 때가 중학교
3학년 때 쯤으로 생각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고 괜히 누군가
보고 싶어지곤 했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동경이라고 할까, 설렘이 있던 바로 그 자리
가 시가 태어난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자신 대학에서 시작법을 가끔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는 걸 느낀
적이 많습니다. 시에 대해서 일정한 이해나 믿음들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기
본적인 약속 아래서 시 쓰기를 해야 할 텐데 딱히 '시는 이런 거다'라고 말하기는 참
으로 힘듭니다. (중략)

그러나 제가 처음 시를 쓸 때에는 자전거를 끌고 대시인을 찾아다녔던 우편 배달부와
같은 수준도 못 되었습니다. 연애 편지를 잘 쓰기 위해서 쫓아다니다가 은유라는 것을
체감적으로 터득했지만, 시가 처음 찾아온 사춘기 무렵에 내가 생각했던 시란 지금 생
각해도 유치무비한 것이었습니다. 김소월의 '초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혹은 이발소
그림과 함께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
라'라는 속된 경구 수준이었거나, 아니면 소월류의 직설적인 감상주의가 저를 사로잡
았습니다.

나의 손위 형님이 자기가 쓸려고 사다둔 60년대 일기장이 있었어요. 그 일기장에는
매월 그 달에 어울리는 우편엽서 같은 풍경에 시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11월이면 낙
엽이 쌓여 있었고, 거기에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시가 적혀 있는
걸 좋아서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6월이었던가, 사슴이 멀리 있는 숲을 배경
으로 릴케의 '고독'이라는 시가 실려 있었어요. 별것도 아니었는데 '고독 너의 희푸른
이마에 나를 눕히노니' 하는 부분을 읽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슴이
무너져내려 견딜 수 없게 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아마 다른 많은 분들도 시를 읽으면
서 얼마쯤 다르기는 하지만 저와 마찬가지의 경험들을 했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주저앉는, 길을 걸어가다가 무릎의 힘이 푹 빠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
아 버리는 느낌을 경험한 사람만이 시를 읽을 수 있고 시를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
각합니다.

시를 쓰고 읽고 즐기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눈, 시의 눈이 가슴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이게 주저앉아 버려야 합니다. 시를 향한 눈이 먼저 열려야 다른 사람의 시도 받아들
일 수 있고, 그 감흥이 반복되면서 눈높이가 점점 올라가고 시적 수위가 높아질 때에
시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가 나를 찾아와서, 시가 들어갈 가슴에 있는 경락이 열렸
을 때 사람들은 흔히 낙서를 하기 시작합니다. 낙서를 하고 그 낙서가 떨어지는 글자로
끝나지 않고, 대개는 친구건 이성이건 누군가에게 편지, 혹은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모든 시의 출발은 이 일기장과 연애 편지가 아닌가 합니다. 밑 모를 두려움과 함께 자기
자신이 항상 못마땅해 자책하는 심정이 되었을 때, 또는 마음이 밖으로 열려서 누군가
가 보고 싶어질 때, 혹은 어떤 곳으로 훌쩍 가버리고 싶어질 때에 품는, 이른바 먼 곳에
대한 동경을 우리는 낭만성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시의 출발점은 이 낭만성, 자기의 다
른 것에 대한 그리움, 설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40이 넘고 전업작가로서
시집도 내고 하는 이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모든 시인들은 최초의 그 자리,
낭만성이라고 하는 불편한 공명통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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