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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3 전체: 1428725

 

효녀 심청전

 ▷ 심청전(沈淸傳)의 줄거리

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우연히 눈이 멀어 장님이
되었는데, 장님이 된지 얼마 후 그의 부인 곽씨는 딸을 출산하고 그만 죽게 되
었다. 심학규는 딸의 이름을 청이라 짓고 혼자서 기르게 되었다. 그는 가난하여
유모를 둘 수 없어 눈먼 몸으로 심청을 업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젖동냥을 하
고, 음식을 얻어 먹이며 딸을 키웠다.  심청은 어질고 착하게 자랐다. 그녀가 열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걸식하여 지극히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
리고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고 바느질을 익혔다.

   <곡성군청 자료사진>        이러한 심청의 좋은 소문이 인근에 나돌자 무릉동
이라는 곳에 사는 장승상이 양녀를 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심청은 자신이 양녀가 가게 되면, 외롭게 살아
갈 아버지를 걱정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하루는 몽운사의 주지가 공양미를 얻으러 왔다가 심봉
사를 보고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눈들 뜨
리라'고 하였다.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앞뒤를 생각하
지 못하고 심봉사는 선뜻 공양미를 받치겠다고 약속하
고 말았다. 그러나 빌어먹고 사는 자신의 처지에 삼백
석을 구할 길은 없어 근심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이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된 심청은 부친의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때마침 중국의 상인
들이 15세 된 처녀를 사기 위해 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가야 하는 뱃길에 인당수라는 곳이 있는데, 용왕의 심술
에 배가 지나가기에 아주 위험한 곳이었다. 위험에서 피
하기 위해서는 용왕에게 15세의 처녀를 산채로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청은 그 상인들을 만나 자기
몸을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바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로 하였다.

심청은 상인들과 같이 떠나는 날이 되자 아버지와 고통스러운 이별을 하고, 인당수
에 이르러 제물로 몸을 던지게 되었다. 이 때 옥황상제는 심청의 지극한 효성에 감
동을 받아 용왕에게 명하여 심청을 옥련화에 싸서 물위에 띄우게 하였다.  상인들이
돌아가는 길에 인당수 위에 떠 있는 지금껏 보지 못한 큰 연꽃을 발견하고 그것을
건져 가지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와 왕에게 바친다.

왕이 오무라든 연꽃을 펴게 하니, 그 속에서 아릿따운 여인이 나왔으니, 곧 심청이
었다. 왕은 심청을 왕후로 삼는다. 왕후가 된 심청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왕에게
간청하여 장님 잔치를 열고, 세상의 모든 장님들을 초대한다.

한편 심봉사도 장님을 위한 잔치가 있다는 말에 그곳에 가기 위해 어렵게 노비를 마
련하였다. 그러나 그 돈을 후처로 얻은 뺑덕어미가 훔쳐 달아나고 말았다. 심봉사는
하는 수 없이 거지 생활을 하면서 잔치가 열리는 곳을 찾아갔다.  

심청은 장님 잔치를 열고 혹시나 자기 아버지가 왔는가 여러 날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자 실망한다. 잔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던 심
봉사를 발견하였다. 심청이 감격 끝에 '아버지'를 부르자, 깜짝 놀란 심봉사는 눈을
뜨게 되었다. 이에 부녀는 서로 끌어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근원설화

심청전의 내용과 비슷한 설화로는 <삼국사기〉·〈삼국유사〉의 〈효녀 지은(知恩)
설화〉, 〈삼국유사〉의 〈거타지(居陀知)설화〉인도의 〈전동자(專童子)설화〉·
〈묘법동자(妙法童子) 설화〉, 일본의 <소야희 (小夜姬)〉등이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설화로 <인신공희(人身供犧)설화〉, 〈관음사 연기(緣起)설화〉,
불전(佛典)의 〈효자 불공구친(佛功救親)설화〉를 들기도 하며, 오구굿 계통의
〈황천무가 黃泉巫歌〉를 당시의 사회적 윤리에 맞는 소재로 각색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관음사 연기설화

대흥현에 살던 맹인 원량은 처를 잃고 홍장이라는 딸과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날 공
덕을 쌓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홍법사 스님의 말을 듣고는 외딸 홍장을 시주하였다.
홍장은 스님을 따라가다 소랑포에서 쉬고 있었다. 한편 진나라 혜재는 황후가 죽고 난
후 외로움에 젖어 있다가 꿈을 꾸고는 현몽한 대로 동국에 신하를 보내었다. 황제의 신
하들이 소랑포에 도착하여 홍장을 보고는 스님에게 보화를 주고 그녀를 데리고 갔다.
황제는 홍장을 새 황후로 맞았고, 이어 홍장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황후는
자신의 행복을 얻었지만 고국에 있는 부친을 잊지 못하여 관음상을 조성하여 바다 건
너 동국으로 건너보내었다. 배에 실은 관음상은 표류 끝에 옥과현 출신의 성덕처녀의
손에 들어갔고, 성덕처녀는 그 관음상을 고향에 있는 성덕산에 안치하고 관음사를 창
건하였다. 그 후 원량은 부처에 대한 시주 공덕으로 인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관음사>                        이러한 효녀 홍장이야기는 곡성 관음사의 관음
신앙과 결부되어 호남지역에서 주로 전승되었다.
그러다가 황후가 된 홍장과 그 부친 원량의 개안 이
야기는 심학규의 딸 심청이 황후가 되고 그 부친 또
한 개안하는 이야기로 판소리와 함으로써 심청가를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심청 이야기의 모델이 되는
원홍장의 출생지가 바로 곡성이라고 볼 수 있다.

 심청마을 가는 길(곡성군청자료)

곡성읍에서 섬진강을 끼고난 국도17호선을 따라 10km쯤 가다가 우측으로 전라선 철
길을 건너 올라가면 20여호의 송정(松亭)마을이 나타난다.
현재의 마을은 1979년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이주되어 새로 조성된 마을이며 심청마
을은 여기서 골짜기를 따라 1km쯤 더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빈집만
몇채 남아 있다. 이 마을에서의 왼쪽으로 도화천을 따라 올라 가면 무릉도원이 있고 도
화천 중간쯤에 심청이 목욕했다는 옥녀탕이 있다. 또 마을 입구 도화천 건너편 일대에는
옛날 쇠를 다루는 대장간이 있었다고 하여 "석아살"이라고 부르는 지명과 화살촉을 뜻하
는 살태골, 병마골 등 옛지명이 남아 있다.

또한 서기 379년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보냈다는 일본의 보물인 칠지도를 만드는
철의 생산지인 곡라와 중국상인 등이 내륙지역인 곡성까지 들어오게 된 이유가 양질의
철을 구하기 위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철광석이 마을의 담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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