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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38 전체: 1413552

 

훈민정음과 신숙주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보한재(保閑齋). 본관은 고령(高靈).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에서 공조참판 장
(檣)의 3자로 출생하였다.

1438년(세종 20)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친시문과에 급제, 41년 집현전부
수찬이 되었다. 42년 서장관으로 일본에
건너가 시명을 떨치고, 귀국 도중 쓰시마
섬에 들러 계해약조(癸亥約條)를 체결했다.

그 뒤 세종의 명으로 성삼문(成三問)과 함
께 유배중이던 명(明)나라 한림학사 황찬
(黃瓚)을 10여 차례나 찾아가 음운에 관한
지식을 얻어 정운통고 일병 사성통고를 저
술하는 등 훈민정음 편찬에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조선 500년 동안에 가장 뛰어난 어학
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종대왕이 기획했던 언어정책을 충실히
보필하였으며 세종대왕이 1443년(세종25)
에 창제한 훈민정음의 해설서 집필에 참여
하여 다른 학자와 함께 1446년(세종 28) 에
<훈민정음해례본> 편찬을 완료하였다.

1445년(세종 27)에는 권 제, 정인지, 안 지 등이 지어 올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의 내용을 다른 학자들과 함께 1447년(세종 29)까지에 걸쳐 보완하였다.  

이외에도 우리 나라의 전승한자음을 정리하여 표준 한자음을 설정하려는 목적에서
편찬한 『동국정운』이 1447년(세종29)에 6권으로 완료되고 1448년(세종30) 출판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32세였으며 서문까지 쓴 것으로 보면, 이 편찬 사업에 중추적
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55년 수양대군이 즉위한 뒤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고령군에 봉해졌고, 다음해에 병조
판서·대사성 등을 지냈다. 57년 우의정에 오르고 59년 좌의정이 되었으며, 60년 강원·
함길도의 도체찰사로서 모련위(毛憐衛)의 야인을 정벌, 그들을 두만강 밖으로 쫓아내
고 우리 영토를 두만강까지 확장하고 돌아왔다. 62년 영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임하
였다. 예종이 즉위하자 곧 원상(院相)이 되었고, 68년 남이(南怡)를 숙청한 공으로 익
대공신(翊戴功臣) 1등이 되었으며, 71년(성종 2)에 좌리공신 1등에 책록, 영의정에 재
임되었다.

          <국조오례의>
72년에는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
하였고, 탁월한 학식과 문재로써 《국조오례의(國朝五
禮儀)》 《동국정운(東國正韻)》 《국조보감》 《영모
록(永慕錄)》 등을 찬수했으며, 《보한재집》 《북정록
(北征錄)》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사성통고(四
聲通攷)》 등의 저서를 지었다. 또한 글씨를 잘 썼는데,
전하는 것으로는 《몽유도원도》의 찬문(贊文)과 해서
체의 《화명사예겸시고(和明使倪謙詩稿)》 등이 있다.

세조는 "일찍 제환공에게는 관종이 란고종게는 장량이
관무제에게는 등우가 촉한선주에게는 공명이 당태종
에게는 위징이 있었고 내게는 신숙주가 있으니 군신간
에 서로 잘 만나는 것은 하늘이 주시는 것이요, 인력으
로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였다.

그는 중국어, 왜어, 몽고어, 여진어에 능통해서 그들의
사신이 오면 통역관 없이도 자유롭게 대화하였다.

신말주(申末舟: 1439-1503)

자는 자즙(子楫). 호는귀래정(歸來亭). 본관은 고령. 공조참판 장(檣)의 다섯째 아들
이며 숙주의 아우로 출생하여 문종 때 생원이 되고 단종2년(1454)에 식년문과에 급
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었다가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관직을 사임하고 처가가
있는 순창읍 남산대로 낙향했다.

세조 5년(1499)에 헌납 집의를 거쳐 1466년에 대사간에 이어 진주목사, 충청병사를
지내고 성종 7년(1476)에 전주부운을 지낸 다음에 다시 순창에 돌아와서 귀래정을
짓고 여생을 마치었다. 선조40년(1667) 순창에 화산 서원이 건립되고 귀래정 아래
현종4년(1663)에 10세손 좌승지 신경준(도로고저자)이 글을 짓고 동춘 송준길이
글씨를 쓴 귀래정신선생유허비에 그 행적이 소상하게 쓰여 있다.

또한 그의 부인 설씨가 남편과 함께 순창에 낙향해 있을 때, 광덕산(廣德山)에 절을
세우기 위하여 1482년(성종 13)에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선하는 글을 짓고 사찰의
설계도를 그려 돌려보게 한 설씨부인권선문첩(薛氏夫人勸善文帖)이 보물로 지정
되어 있다.

▷ 유적지

출생지인 호남의 3대 명촌이라는 나주시 금안동에는 특별한 유적은 없고,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에 경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그의 묘가 있다.
또한 순창읍에는 신말주의 귀래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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