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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8 전체: 1413737

 

흥부전

 ▷ 흥부전의 고향

흥부전은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징악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고전소설이다.

지금까지 흥부전은 하나의 이야기로만 알려져 왔으나 남원지방의 설화를
토대로 흥부와 놀부가 실존했다는 설도 있다. 흥부전의 작자나 연대는 정
확히 알수가 없으나 남원지방에서는 오래전부터 흥부전과 같은 설화가 내
려오고 있는데, 형인 박첨지는 부자임에도 인색하였고, 동생인 춘보는 가
난하지만 성실하게 살다 부자가 되어 이웃에 많은 선덕을 베풀었다는 내용
이다. 흥부가의 '제비노정기'와 '박타령'등에 나오는 지명들을 근거로 하여
1992년 경희대 민속학연구소의 고증을 통해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와 놀부
의 출생지로(박 첨지 설화),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마을로 (춘보설화) 알려졌다.

지금도 두 마을에서는 삼월 삼짇날 박첨지의 제사와 정월대보름날 춘보망
제를 지내고 있다. 흥부마을엔 흥부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흥부의 뜻을
기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성산리 흥부마을 흥부각과 조각상>

흥부 출생지로 알려진 남원시 인월면 성산마을에는 놀부의 모델로 알려진
박첨지의 묘를 비롯해 박첨지네 텃밭, 서당터가 있으며 매년 삼월 삼짇날
박첨지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제비를 몰고 온 박씨를 심어 부자가 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강정 모퉁이, 고둔터, 공구재, 노디다리, 생금
모퉁이, 아막성, 화초장, 바위거시, 흰죽배미 등 고전에 나왔던 지명이 남
아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낸다.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흥부전의 발상지로 고증되면서 1993년부
터 남원시에서는 흥부를 기리는 흥부제를 열고 있다. 흥부의 착한 마음씨
와 형재애를 본받기 위해 매년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는 날인 음력 9월 9일
에 열린다.

전야제를 시작으로 창무극 흥부전, 길놀이, 전국학생 국악경연대회, 흥부
놀부 부인 줄다리기, 사랑의 흥부가족잇기, 흥부 박타기 등 다채롭고 흥미
로운 축제가 펼쳐진다.

                              <성리 흥부마을 앞 흥부상>

 ▷ 판소리 흥보가의 근원 설화성

지금까지 근원설화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방이설화'나 몽고의 '박타는 처녀 설화' 가 흥보가와 내용이 비슷하여 가
장 가까운 설화로 지목되어 왔다.

  방이 설화

신라에 방이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 방이는 가난하여 의식을 구걸해서 살
아가는 형편이었고, 아우는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가서 누에
알과 곡식의 종자를 구걸했다. 동생은 매우 나쁜 사람이었으므로 알과 종
자를 삶아서 주었다. 이를 모르는 형은 그대로 받아 왔으나, 알 중에서 누
에 한 마리가 생겨 나더니 황소만큼 자랐다. 동생은 샘이 나 찾아와서 누에
를 죽이고 갔다. 그랬더니, 백 리 사방에서 뭇 누에가 모여들어 실을 켜 주
었다.

종자도 역시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는데 이삭이 한 자나 자라자,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것을 물고 달아났다. 그는 새를 따라 산 속으로 갔다가
밤을 맞았다. 이윽고 난데없이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금 방망이를 꺼내
서 이리저리 치는데 그 때마다 부르는 것이 나타났다. 그들은 술과 밥을 차
려서 한참 먹더니 어디론지 가 버렸다. 방이는 이 방망이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아우는 시기심이 나서 그도 역시 형이 한 바와 같이 해서 새를 따라가서 아
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그를 보자, 이놈이 전에 방망이를 훔쳐 간 놈이라
하면서 갖은 부역을 시킨 후 코를 뽑아 코끼리처럼 만든 후 집으로 보내 주
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속을 태우다가 죽고 말았
다. 그리고 그 방망이는 방이의 후손에게 전해졌는데, 어떤 후손이 "이리 똥
내놓아라."고 희롱했더니 갑자기 벼락이 치더니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박 타는 처녀 설화

옛날 어느 때 처녀 하나가 있었다. 하루는 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니까, 무슨
서툰 소리가 들리는데, 나가 본즉 처마 기슭에 집을 짓고 있던 제비 한 마리
가 땅으로 떨어져서 버둥거리며 애를 쓴다. 에그 불쌍해라 하고 집어 살펴본
즉, 부둥깃이 부러졌다. 마음에 매우 측은하여, 오냐 네 상처를 고쳐 주마 하
고, 바느질하던 오색 실로 감쪽같이 동여매어 주었다. 제비가 기쁨을 못 이기
는 듯이 날아갔다.

얼마 뒤에 그 제비가 평소와 같이 튼튼한 몸이 되어서 날아오더니, 고마운 치
사를 하는 듯이 하고 날아간다. 우연히 날아간 자리를 본즉, 무엇인지 씨앗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이상한 일도 있다 하고, 무엇이 나는가 보리라고 뜰 앞에
심었다. 그것이 점점 커지더니, 그 덩굴에 가서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엄
청나게 크니까, 희한한 김에 굳기를 기다려 하루바삐 타 보았다. 켜자마자 그
속에서 금은 주옥과 온갖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그 처녀가 금시에
거부가 되었다.

그 이웃에 심사 바르지 못한 색시가 하나 있었다. 이 색시가 박 타서 장자 된
이야기를 듣고, 옳지 나도 그 색시처럼 제비 상처를 고쳐 주리라 하였다. 그
래서 제집 처마 기슭에 집 짓고 사는 제비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부둥깃을 부
러뜨리고, 오색 실로 찬찬 동여매어 날려 보냈다. 얼마 지나니까 과연 박씨 하
나를 가져왔다. 너무나 기뻐서 얼른 뜰에 심었더니, 여전히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오냐, 금은 주옥 갖은 보화가 네 속에 들었느냐 하고 그 박을 탔다.
뻐개어 본즉 야단이 났다.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독사가 나와서 그 색시를 물
어 죽였다.

 ▷ 찾아 가는 길

흥부 출생지 : 남원시 인월면 성산마을
흥부 발복지 :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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