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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24 전체: 1428442

 

박성건의 금성별곡(錦城別曲)

▷ 박성건(朴成乾)

전남 나주출신으로 55세인 성종3년
(1472년)에 병과에 급제.금성교수, 춘추
관기사관, 소격서령, 장수현감을 지냄.

조선 성종때인 1479년 오한 박성건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지었다는 간죽정
이 영암군 구림마을에 세워져 있고 그의
후손들이 현재 구림마을에서 함양 박씨
씨족을 이루고 있다.

 

<간죽정의 모습-전남 영암군 구림면>

 


금성별곡(錦城別曲)

금성은 전남 나주시의 옛 이름이다.
박성건이 금성교수로 있던 성종11년(1480년)에 그의 생도 열 사람이
한꺼번에 과거의 소과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었다.
금성별곡은 이를 기뻐하여 부른 노래이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별 내용은

(제1장) 금성고을의 빼어난 지세와 인물
(제2장) 금성 향교의 위용과 면학의 기풍      
(제3장) 고을 수령의 선정과 선교
(제4장) 향교 교수의 문풍 진작 내용
(제5장) 과거에 함께 오른 생도 10인의 면모
(제6장) 가무와 함께하는 풍류

이 작품에서 지역의 사대부들의 긍지와 자신만만한 패기를 엿볼 수 있다.

금성별곡은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경기체가로 당시 사대부들의 진취적인
기상과 아울러 형식상으로는 정격형에서 변격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나주향교 대성전과  금성산, 금성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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