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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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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견훤의 탄생설화

 < 삼국사기> 기록

견훤은 황간견씨(黃磵甄氏)의 시조. 본성은 이(李). 아자개(阿慈介)의 아들.
상주 가은현(현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다. 신라에 태어나 서남해 지방
방위에 공을 세워 비장이 되었는데,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892년(진성여
왕 6) 반기를 들고 일어나 여러 성을 공략하고, 무진주(현 광주)를 점령하여
독자적인 기반을 닦았다.

900년(효공왕 4) 완산주(현 전주)에 입성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였다. 관제를 정비하는 한편, 중국에도 사신을 보내어
국교를 맺으면서, 궁예의 후고구려와 자주 충돌하며 세력 확장에 힘썼다.
그 뒤 왕건이 세운 고려와도 수시로 혈전을 벌여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926년 신라의 수도인 금성(현 경주)을 함락하여 친고구려 정책을 쓰던 경애
왕을 살해한 후, 김부를 왕(경순왕)으로 세워놓고 철수하여 신라인의 원한을
샀다. 929년 고창(현 안동)에서 왕건의 군사에게 크게 패한 후부터 차츰 형세
가 기울어 유능한 신하들이 계속 왕건에게 투항하고, 934년 웅진(현 공주)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에 귀속했다.

이듬해 왕위계승 문제로 맏아들 신검(神劒)이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
했으나 탈출하여,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상부 칭호와 양주를 식읍으로 받
았다. 936년 왕건에게 신검의 토벌을 요청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고려의 왕건이 신검 등을 우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못이겨 앓다가 얼마 뒤
황산(현 충남 논산군 연산면)에서 등창이 나서 죽었다.

  <삼국유사> 기록

옛날 광주(光州) 북쪽 5리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에게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이 아버지에게 아뢰기를 밤마다 자색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자고 간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그 남자의 옷에 실을 꿴 바늘을 꽂아 두라고
일러서 딸이 그 말대로 했는데, 이튿날 아침 실을 따라가 보니, 북쪽 담 밑에서
실끄트머리가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그 곳을 파 보니 크나큰 지렁이 한 마리가
허리에 바늘이 꽂혀 죽어 있었다.

얼마 후에 그 딸에게 태기가 있어서 아들을 낳았는데,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
이라 이름하고, 900년 후백제를 건국하여 완산군에 도읍을 정했다. 이때 신라는
진성여왕 6년, 당은 소종(昭宗) 경복(景福) 1년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견훤이 광주 출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대동여지도> 등에 나오는 견훤대가 광주광역시 북구 생룡동 마을 뒤
죽취봉(竹翠峰)이라는 설도 있다.

 ▷ 생룡마을과 죽취봉 가는 길

광주시의 북쪽에 있는 우치공원의 정문에서 북으로 200여m 거리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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