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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1-06-13 12:07:28, Hit : 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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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 시작

때는 1866년 병인양요. 조선군과 프랑스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한창인 강화도에서 외규장각이 침탈을 당하게 됩니다. 세월은 흘러 기억에서 조차 사라질 뻔했던 외규장각이 한세기를 지나 한 동양에서 온 작은 체구의 여성에게서 다시 깨어나게 되는데요.

오늘 날 모두 잊고 지낸 외규장각 도서는 몇 년간에 걸친 외교적 실랑이 끝에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감격스러운 선물을 안기기까지 한 사람의 노력이 절대적이었지요.


- 평생을 독신으로 사신 83세의 노학자 박병선 박사.

1928년 생으로 어렸을 적에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박병선 박사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그 당시로서는 초 엘리트코스인 해외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사범대를 졸업한 뒤 역사 연구를 좀 더 깊이 하고 싶어 문화선진국인 프랑스 파리로의 유학 길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 꿈 많은 소녀에게는 한가지 임무가 쥐어지게 되는데요. 당시 한국의 유명 역사학자였던 이병도 선생으로부터 받은 중요한 임무는 100년전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보라는 것이었죠.

기록으로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함대가 외규장각의 고문서를 약탈해갔었는데 실제로 아직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식민지배 시절 프랑스는 전 세계의 많은 유물들을 자국으로 약탈해 갔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박물관에는 자국의 유물보다 훔친 유물들이 훨씬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니까요. 결국 그녀는 이병도 선생이 부탁한 데로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할 당시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의 감동을 이렇게 표한 합니다.

“처음 표지를 넘기니까, 먹 향이 퍼지는 거예요. 100년이 지났는데도 먹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라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자 도서관측에서는 그녀를 반역자로 몰리게 합니다. 결국 그날로 그녀는 해고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고도서가 발견되었다고 한국 정부는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프랑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오히려 박병선박사에게 조용히 있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그녀도 의지의 한국인이었고 책임감, 사명감으로 가득 차신 분이었습니다. 해고 된 직후 그녀는 도서관에 매일 같이 출근하여 외규장각 도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요구했지요. 그 이유는 나중에 반환을 요구할 때 당당하게 뭘 반환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뭐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반환을 요구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은 하루 아침에 친구에서 적으로 돌변하여 박병선박사를 대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끊임없는 대출요구로 결국 열람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한 권, 한 권 확인한 뒤 297권의 도서 목록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그 내용을 정리해 우리가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는데 또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 외교의 중심에선 외규장각 도서

1991년 외규장각 도서를 되찾기 위한 우리 나라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서울대 규장각이 처음으로 반환을 주장하고 나섰고, 이듬해 우리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공식 요청하게 되었는데요. 결국 당시 대통령이던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경부부속철도부설권을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딴다는 조건 하에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약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부가 아닌 일부만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말을 바꿔버린 것이죠.

그 일 이후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한 실랑이가 계속되다가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는데요. 올해 G20의 의장국인 프랑스는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한국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됩니다. 거기에 한국의 높아진 국력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죠. 결국 오랜 협의 끝에 4차에 걸친 반환작업으로 모든 외규장각 도서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비록 ‘5년간 대여한다’는 명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에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 박병선 박사를 포함한 국민모두가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한 노박사의 살신성인의 정신 덕분에 한 나라의 귀한 보물이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쁜 일에도 불구하고 박사는 아직도 많은 유물이 해외에 있다면서 후학들이 반환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박병선 박사님은 진정한 애국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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