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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12부터
 오늘: 46 전체: 1437638

 

장화왕후와  완사천

왕건과 오씨의 만남

왕건은 군사 원정에서 무력 사용을 최소화하였다.

원정의 목적은 호족세력을 굴복시켜 휘하에 복속시키는데 있었으므로,
무력 충돌을 피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책은 없을 것이다. 왕건이 즐겨 쓴 방책 중의 하나는 호족의 딸을 유혹하여
그녀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지역의 호족을 자기편으로 포섭하는 방식이다.

왕건의 나주 진출에서 그 전형을 엿볼 수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왕건을 만나기 전날 밤 오씨녀는
영산강 포구의 용이 뱃속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꾼다. 다음날 왕건은 나주
에 출진하였는데, 포구에 배를 대고
하천을 바라보니 오색 구름의 기운이
있어 다가가 아름다운 여인이 빨래하
는 장면을 목격한다. 왕건과 그녀는
하룻 밤을 같이 한다. 그러나 왕건은
오씨의 딸에게 임신을 시키려 하지 않
았고, 오히려 오씨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아이가 무(武).
이가 곧 왕건의 뒤를 이어 고려 2대왕
으로 즉위하는 혜종이다.

후일 그녀는 장화왕후로 봉해진다.

그 여인의 아버지는 이부시랑을 제수받은
나주지역의 호족이었던 오희(吳禧)였다.

오희는 신라 17관등중 8등급인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부인과 혼인하여
3남1녀를 두었다. 3남은 오상(吳相), 오환(吳桓), 오검(吳檢)이고 1녀가 바로 장화왕후
이다.

후에 고려가 건국하자 나주오씨부인은 제2왕후로 책봉되어 장화왕후라 불리웠으며,
태조와의 사이에 난 왕무는 태자중에서 적통이라 하여 원윤에 책봉되어 후계자가 되
었고, 그 공으로 오희는 다련군(多憐君)에 봉작되었다.

왕건은 오씨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호족인 그 부모의 도움을 받아 군사작전에 이용하
려했던 것이며 왕건이 나주지역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호족세력의 적
극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주 호족세력의 지원은 왕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하여 왕건은 918년에 고려를 건국한 직후에 나주를 특별행정구역인
'나주도대행대'로 지정하고, 나주도대행대의 관할자를 시중이라 부르게 하였다.

나주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했던 것 자체가 영광이라 할 것인데, 그 책임자를
칭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을 지칭하는 시중이라 했다니 엄청난 파격이었다.

그만큼 나주지역에 대한 왕건의 배려는 컸던 것이다.

 완사천(浣紗泉)과 어향(御鄕)의 전설

나주에는 오씨녀, 즉 장화왕후가 물을 길었다는 완사천이라는 우물터가 전한다.

그리고 장화왕후가 낳은 무가 고려의 2대 혜종이 되었으므로, 왕을 배출한 고장이라
하여 나주를 흔히 어향(임금의 고향)이라 부른다. 당시에 나주가 서남해지방의 중심
도시였으므로, 이러한 전설이 나주지역에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나주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왕건이 옹달샘에서 물을 긷던 여인에게 물을 청해 먹었는데
이때 여인은 물에 버드나무 잎을 하나 띄워 주었다고 한다.

이상히 여긴 왕건이 연유를 묻자 여인은 “장군께서 목이 몹시 마르신 것 같은데
급히 마시면 체할 것 같아 천천히 마시도록 나뭇잎을 넣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왕건이 나이를 물으니 17세, 후에 이 여인이 장화왕후(莊和王后)가 된다.

완사천은 지금의 나주시청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국도변에 있는데 시 청사를
옮길 때 택지를 조성하면서 시멘트로 샘 주위를 정비해 옛날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옛부터 샘물이 넘쳐 흐르는 꿈을 꾸면 길몽(吉夢)이라고 하여 재물을
얻으며 배필을 맞아들이거나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다는 해몽이고 보면
고려를 세운 왕건과 장화왕후를 맺어준 완사천은 유서깊은 샘물이다.

 ▷ 완사천 가는 길

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된 나주시 송월동 1096-5에 위치한 작은 옹달샘이다.
광목간 1번 국도옆 나주시청 입구에 있다.

또한 나주중.고 정문 옆에는 '왕건샘'이라 불리는 우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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